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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나주 독립운동 3대...김창곤-김석현 부자, 김철-김재호 부자

by 호호^.^아줌마 2023. 3. 3.

기미년 31일 정오,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라도 나주에 도달하기까지는 보름이라는 시일이 걸렸다.

 

315, 이날은 아마도 나주장날이었을 것이다.

이날 오후 나주읍내에서 최기정 등 수백 명의 만세시위가 나주 최초로 발생하였고, 이후 23일 다시면에서, 43일과 4일에는 영산포에서 만세운동이 이어졌다.

 

삼일절 104주년인 어제,

나주에서는 나주시가 주최하는 기념식이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기념탑 앞에서 거행되고, #나주사랑시민회는 나주시 청동 나주북초등학교 뒷산에 모셔진 #하산_김철선생 묘역에서 추모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철 선생의 차남 되시는 김달호 선생과 손자 김동필 씨가 처음으로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아버지 김창곤-장남 김석현 부자 의병,

아버지 김철(복현)-장남 김재호 부자 독립운동가,

 

할아버지, 큰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3대째 독립운동을 한 이런 집안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바로 나주의 하산 김철 선생의 집안이다.

 

친일파의 자식들은 부모의 친일덕에 호의호식하면서 떵떵거리며 살고, 독립운동가의 자식들은 사회적 냉대와 가난과 무관심 속에 어렵게 산다는 말을 김철 선생의 차남 김달호 선생의 4분 남짓한 말씀에서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무슨 일 하시는 지도 모르고 살았고, 돌아가시기 5년 전에 서울 집으로 모셔 와 같이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장에 오신 분들이 아버지가 생전에 하신 일에 대해 얘기해 주셔서 알았어요. 힘들었죠. 힘들었어요...”

 

김창곤-석현 부자는 의병활동을 한 죄로 함께 처형되고, 해방 후 나란히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김철(복현)-재호 부자는 독립운동을 하고, 옥살이를 하고, 해방이 되어서는 요주의 인물로 미군정과 독재정권에 박해를 받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셨고, 돌아가신 뒤에야 건국훈장 애족장, 애국장을 받으셨다(1990)

 

이런 집안, 이런 가문이라면 그 가족과 후손들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할까 생각했는데 현실은 3월의 꽃샘추위만큼이나 쌀쌀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심장이 뻐근해졌다.

 

또 하나의 사실은,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생전에 자주 뵈었던 나주교회 김전자 집사님이 김철 선생의 여동생이라는 얘기를 듣고 사실확인을 해볼 겨를도 없이 요양원에 계시다 쓸쓸히 돌아가셨다.

나의 굼뜸이 위대한 일가족의 얘기를 들을 기회를 놓친 것이다.

 

하지만 나주의 삼일절은 어제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315일 금성관 앞 망화루에서 나주의 민중이 만세운동을 펼치다 일본놈들에게 쫓겨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내빼다녔을 걸 생각하면 우리 동네 골목이 자랑스럽고, 4월에는 영산포에서 또 그렇게 만세운동을 펼쳤을 것을 생각하니 참 자랑스럽다.

 

 

 

그런데 나는 부끄럽다.

이런 나라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이불 속에서 만세 부르고 있는 내가 참 한심하다.

어떻게 저런 놈들한테 나라를 맡기냐... 가슴만 쳤지 아무것도 행하는 것은 없다.

 

선생의 묘소에서 나와 시내에 들어서니 원도심 금빛상점가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렇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태극기를 쥐어준다면 나는 피하지 않고 함께 군중 속으로 빨려들어가서 소리 높여 외칠 것인다.

그것이 대한독립 만세든, 독재타도든, 반미반제 양키 고홈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