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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이야기7

나주중학교 學校史2...나주민립중~나주중 교사시절 장지량 회고담 ‘빨간 마후라’ 장지량 공군참모총장의 나주민립중학교 교사시절 회고록 1945년 11월 말의 일이다. 미군정이 들어서고 서울은 혼란상이 가중돼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경성대(서울대) 진학을 꿈꾸고 일봉암에서 입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육사 1년 선배인 홍승화가 갑자기 찾아왔다. “나주민립중학교 선생님들이 공석이래. 고향 후진들을 지도하러 나가자.” 해방 되자마자 인민공화국이 공포됐으나 미군정이 들어서고, 그래서 인민공화국은 불법화됐다. 이로 인해 좌익계 교사들이 모두 사퇴하면서 학교는 공백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학교의 딱한 사정을 들은 나는 고향의 중학을 살려야 한다는 신념과 후배들이 더 이상 향학의 꿈을 저버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가보니 교사는 나와 홍승화를 포함해 단 세 명뿐이었.. 2021. 8. 8.
나주중학교 學校史1...나주의 오랜 숙원 나주민립중학교 설립(1945.10.30) 나주민들의 오랜 숙원 중학교를 설립하다 (1945. 10. 30 나주민립중학교 설립) 나주에는 1906년 설립된 사립영흥학교(현재 남평초등학교), 1907년 설립된 공립나주보통학교(현재의 나주초등학교) 등 24개의 보통학교가 각 면에 설립되었다. 이 학교들이 일제히 세워진 것도 아니고 1910년 2개교, 1928년 15개교, 1945년 24개교로 늘어났다. 이와 함께 실업교육을 위해 1926년 10월에 나주공립농업보습학교가 설립되었고, 1939년에는 금천면에 면업전수학교(해방 직후 호남원예학교)가 설립되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나주에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단계의 인문계 교육을 받기 위한 중학교가 한 곳도 없었다. 보통학교 졸업생 중 비교적 부유한 층은 광주나 서울, 목포, 심지어 일본으로 유학을 갈.. 2021. 8. 8.
야생화 사랑, 어린이 사랑 교장선생님 일하는 나주인, 그들이 아름답다⑤ 야생화 사랑, 어린이 사랑 교장선생님 영산포초등학교 양택승 교장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불황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을 틔우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사회현실 속에서 웃음 한 번 터놓고 웃을 일이 없다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 동료의 모습 속에서 희망을 읽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며 이웃에게 웃음과 희망을 안겨주는 나주인, 그들의 삶 속에 숨겨진 햇살 같은 아름다움을 찾아가 본다. / 편집자주 “어린이 여러분, 남이 알아주는 큰일만이 보람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것이야말로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영산포초등학교에 들어서면 현관 앞에 ‘내 일은 내가, 우리 일은 우리가’ 라는 구호가 눈에 띈다.. 2009.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