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겸손에 관한 글을 읽고
며칠 동안 그 단어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오늘은 제 나름대로 결판을 좀 내려고 합니다.
나는 과연 겸손한가?
남들은 나를 겸손하다고 볼까, 오만하다고 볼까?
제 관심은 그것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저는 제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겸손이라는 가면을 쓰곤 합니다.
늘 핸드백 속에 넣고 다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쓰는 거죠.
신실한 크리스찬으로 보이고 싶어서
교회와 사회에서는 늘 웃는 낯을 보이면서
사실 가족이나 남편에게는 무척이나 투박스런 그런 짓을 합니다.
동정심 많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친구들, 딸아이들과 함께 광주 금남로를 지날 때 거리의 천사들에게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던져주지만,
사실은 TV에서 펼치는 ARS 모금에는 손이 안갑니다.
아줌마치고는 흔치않게 정의감 있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MB악법 철폐니, 미디어악법 철폐니 하는 거리 서명과
아고라 청원운동에 서명을 하면서도
연일 지면을 달구는 쌍용자동차 노조파업 기사는 제목만 보고 넘깁니다.
가진 것 없어 보일까봐 차값, 밥값을 내가 내겠다고
큰소리 칠때도 있고,
내 자신에게만 시간을 쓰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내키지 않는 교회 점심 설거지며, 노인대학 주방봉사에도 나가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착한 엄마로 보이고 싶어서,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기자라서 다르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거짓 겸손 중에 '겸손한 교만'을 키워갔던 것이 아닌가 되짚어 봅니다.
그리고 정말 부끄러운 건,
한때 세상을 바꾸는 그런 사회인이 되겠다
꿈 꿨던 직장, 직업에 실패한 뒤
어떻게 보면 그 좌절감에 대한 보상으로
지금의 일에 뛰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그리고는
"그래, 이름만 번듯한 직장에서 유명세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난 남들의 열 몫을 해내고 있어"하며 위안을 삼는 것은 아닌지.
요즘 그런저런 것들로 인해
수치심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냥 시간 지나면 잊혀지겠지,
다른 데 관심 쏟다보면 나아지겠지,
아마 가을이 다가오니까 우울증이 나타나는 것이겠지...
위안을 삼아보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오래 갑니다.
벌써 일주일쨉니다.
그동안 통 새벽기도를 가지 않다가
이번주에 기도를 하라는 목사님의 전갈을 받고 마음 먹고 나갔습니다.
그 전갈을 받은 뒤부터 고민에 고민이 이어진 게 사실입니다.
어떤 기도를 할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지역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푹우로 피해를 입은 지역사람들을 위해?
선교 2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교회의 비전을 위해?
결국
하나님께 무릎 꿇는 기도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기도는 어떤 것인가를
교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도를 궁리하다가
기도하는 그 시간 눈 앞이 캄캄해지고
머리 속이 하얘지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넋두리 같은 말만 중언부언 하고 나왔습니다.
아마도 그러셨을 겁니다.
"알았으니까, 네가 하고 싶은말 요점이 뭔지 정리해서 다시 한번 온나!"
나를 버리고,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내 약점을 포기하고 그분의 능력을 붙들며 사는 것,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남이 알까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먼저 내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 하는 것,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안의 성령께서 느끼는 그 느낌으로 사는 것....
이 글을 써내려 가면서
마음에 그려지는 제 모습입니다.
부족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단지, 비굴하지 않게 보이기 위해서 강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마음으로 담대하고 감사가 넘치게...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연연하지 말고
내 스스로 베풀수 있는 만큼 베풀고
남이 내게 어떻게 대해주나 저울질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할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겟다는...
그런 마음이 듭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나와 그 분의 은밀한 대화 속에
내 자신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속으로의 만족을 위해 드러나지 않게 세상을 사랑하는 것.
그런 삶을 살라는 주장입니다.
마음이 가볍습니다.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작 털어놓을 걸 그랬습니다.
"시시로 때때로 메마른 영혼에 단비를 부어 샤워를 시켜주시는 은혜를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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