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탁’치니 ‘억’하는 수사인가?
1987년 경찰에 의해 불법으로 연행된 서울대상 박종철 군이 수사과정에서 고문으로 숨진 사건을 기억하는가. 이른바 ‘탁’치니 ‘억’하고 죽더라 하던 경찰의 황당무계한 수사발표에 당시 부검의(剖檢醫)였던 중앙대부속용산병원 내과전문의 오연상 박사가 “고문치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증언, 경찰의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이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끈질긴 추적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 8과장 황적준의 일기 증언에 의해 사건의 전모는 드러났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나주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물론 고문수사라는 전제는 아님을 미리 밝힌다.
저물어 가는 10월, 나주사회를 경악하게 했던 88세 독거노인 살인사건,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하루 만에 범인을 잡았다며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했고, 시민들은 나주경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범인이 아니었다. 과학수사가 밝혀낸 진실이다. 경찰은 범행현장에서 발견했다는 모자와 발자국으로 범인을 잡았다고 했는데, DNA분석결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7일 동안 살인범으로 몰려 자백을 종용당하고, 현장검증을 위해 끌려 다녔던 피의자, 그리고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그 가족의 참담한 심정은 겪어보지 않아도 알만한 일이다.
경찰은 처음부터 어설프기 짝이 없는 수사를 했다. 현장에서 발견한 모자를 피의자의 가족이 확인해주었다고 했지만, 살인사건이 난지도 모른 상태에서 사진을 보여주며 “봤냐, 안 봤냐” 물어보니 “본 것도 같고 안 본 것도 같다” 하는 증언을 “봤다”로 단정지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최근 몇 년 사이 잇달아 암수술과 뇌수술을 받아 일상생활에서도 망상적인 언행을 해왔던 피의자는 ‘경찰에 잡혀가면 인두로 지지고 전기고문을 할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경찰이 말하는 대로 진술을 했다지 않은가.
그런 상태의 진술을 곧이곧대로 믿고 범인으로 단정 지어 버린 경찰은 분명 ‘아마추어’라는 힐난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은 피의자를 석방한 뒤 곧바로 또 다른 피의자를 검거해 진범을 잡았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는 주변에서 발견한 담배꽁초 하나가 단서가 됐다. 주변 담뱃가게에 물어보니 ‘누구인 것 같더라’ 해서 붙잡고 보니 이번에는 지문과 DNA까지 일치한다는 것.
하지만 이번 피의자는 본인이 한 짓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어떻게 진범임을 밝혀낼 지 두고 볼일이다.
현재 첫 번째 피의자 가족들은 살인범이 아닌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나주경찰, 이번 실책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수사책임자는 물론 서장이 직접 피해자와 시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승진과 포상에 목숨을 거는 성과주의와 ‘족치면 된다’는 식의 수사관행은 없었는지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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