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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이야기

나주문화․예술기획…행사는 풍년, 관객은 흉년

by 호호^.^아줌마 2008. 12. 16.

문화․예술기획…행사는 풍년, 관객은 흉년


“너무나 훌륭한 공연, 관객이 없어서 어쩌나”

좋은 기획 불구 공짜공연에 관객동원 구설수까지


행사마다 지방자치단체에 손 벌리기 일쑤

지역기업의 메세나운동 아직도 갈 길 멀어

  

“어린 시절 보았던 공연의 감동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제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습니다.”

작은 문화 체험들이 더 큰 문화를 만든다고 말하는 세계적인 퍼포먼스 ‘난타’의 공연 기획자 송승환 씨가 출연한 공익광고 내용이다.

영어단어, 수학공식 하나 더 암기시키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좋은 문화․예술 공연을 통해 자녀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려는 부모는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삶의 질이 높아질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도 증가한다고 하는데, 올 한 해 나주는 문화․예술적으로 얼마나 발전을 했을까?

주요 공연과 관객의 관심도를 중심으로 지역 문화․예술의 현주소와 발전 방안을 모색해본다.<편집자 주>


훌륭한 공연, 이렇게 관객이 없어서야...


지난 3일 저녁 6시 나주문화예술회관 공연장.

전라남도에서 발간한 ‘이 달의 문화행사’라는 작은 리플릿에 나주문화예술회관에서 ‘1+1 피아노의 즐거움’이라는 공연을 한다는 정보를 보고 공연장을 찾았다.

그런데 실제 공연 이름은 ‘그룹 원 플러스(One Plus)가 전하는 피아노의 즐거움’이란다. 공연 관계자에게 리플릿을 보여주었더니 ‘피식’ 웃고 만다.

자리를 잡고 앉아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는데 첫 연주가 시작될 당시 관객수는 17명.

“어떻게 된 공연이지? 그냥 자체 녹음연주회인가?” 하고 팸플릿을 살펴보니, 사)나주시음악협회와 나주시가 주최하고 그룹 원 플러스가 주관한다고 나와 있다.

처음에 피아노 한 대와 연주자 한 명으로 시작한 연주는 연주자 두 명, 연주자 세 명, 그러더니 피아노 두 대와 연주자 4명까지 불어나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2번’을 연주한다.

처음 접해보는 연주방식에 놀라움도 있었지만, 피아노 연주자가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면서 펼쳐지는 피아노의 그 장엄한 선율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감탄 속에 객석을 둘러보니 관객이 48명으로 늘어났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무대 출연자들의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공연 처음이야. 대단해. 그런데 정말 아깝다. 이렇게 사람들이 안 오다니...”

공연장을 나서면서 귓가에 얼핏 스친 얘기가 오늘 나주의 공연문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 사진1> 관객 없이 이뤄지는 나주 공연문화의 현주소


관객 많이 오는 공연에는 이유가 있다?


11월 29일 오후 5시 10분께. 나주문화예술회관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입구에서 주차공간이 없다며 돌아서 나가란다.

스페인 정통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플라멩코’ 공연이 있는 날이다. 도로가에 차를 세워두고 부리나케 공연장으로 향하는데 공연장 입구에서 1층은 꽉 찼으니 위층으로 올라가란다.

취재 때문에 1층에 있어야 한다며 양해를 구하고 들어서니 객석이 꽉 찬데다 서있는 관객도 상당수다.

지난 4월 나주 공연에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바 있는 국내 정상급 기타리스트 서만재 씨의 오프닝 공연과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호세 리의 공연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공연은 고혹적인 자태의 집시여인 엘레나 안두하르의 등장으로 더욱 후끈해지기 시작한다.

‘인생항로(Bordao)’라는 주제로 펼쳐질 이날 공연은 집시여인 엘레나와 다섯 명의 플라멩코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생생한 음악과 춤, 노래가 어우러진 정통 플라멩코 공연으로 어느새 관객들은 출연자들의 발동작과 손동작에 박자를 맞추며 황홀경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몰입하면 할수록 의문이 생긴다. 내가 지금 어디로 빠져들고 있는가?

800석에 이르는 객석이 꽉 찰 정도로 호응이 뜨거운 공연, 하지만 생소한 스페인 음악과 춤 그리고 출연자들에 대해 알 길이 전혀 없다. 알려주는 이도 없다. 그 흔한 팸플릿은 고사하고 곡목을 적은 전단지 하나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공연에 어린 관객들은 몸을 뒤척이며 보채기 시작하는데도  ‘Intermission(휴식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공연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을까 조바심이 나기 시작할 즈음, 공연을 기획한 ‘무지크바움(음악나무라는 뜻)’ 조기홍 회장이 문화예술회관 관계자에게 “마지막 곡이니까 시장님 꽃다발 준비해”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니 시장 비서실, 기획홍보실, 문화관광과, 읍․면․동 공무원들까지 총출동이다. 이쯤해서 작은 의문이 생긴다. “뜨는 공연에는 시장님이 계신다” “시장님이 오시면 공연이 뜬다” 어느 게 맞을까?


*사진2> 모처럼 관객이 많이 찾는 공연, 하지만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나 안내가 이뤄지지 않아 답답함도 크다.



문화예술행사에 주민동원 웬 말인가?


11월 21일 나주시배꽃합창단 제5회 정기연주회.

올해로 창단 8주년을 맞이하는 나주시배꽃합창단은 이날 ‘보리밭’ ‘원 섬머 나잇(One summer night)’ ‘아리랑’ ‘My way’ 등 우리나라 가곡에서 민요, 외국민요, 팝송, 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합창곡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이날 역시 줄잡아 100명 안팎의 관객들이 공연을 지켜봤다. 단원 수가 40여명인 것에 견주어 아마도 그 가족들조차 오진 않은 모양이다.

물론 이날 공연에도 시장과 시의장, 교육장 등 지역 기관단체장들이 참석했다. 관객이 적어서인지 다른 일정 때문인지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자리를 떴지만...

이날 공연을 앞두고 나주시가 각 읍․면․동사무소에 공무원과 주민 동원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가 직원들의 반발로 철회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공문에는 19개 읍․면․동사무소를 대상으로 공무원과 직원 등 총 224명의 동원이 배정됐다는 것. 하지만 일선 공무원들과 공무원노조에서 “공무원을 동원해 연주회를 치르려는 것은 ‘보여주기식’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반발했다는 것.

결국은 동원이 아니면 관객은 모이지 않는다는 지역 공연문화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 사진3> 관객 동원이 불발에 그치면서 결국 ‘그들만의 공연’으로 끝난 나주시배꽃합창단 정기연주회


언제까지 공짜공연, 관제공연일 것인가?


2008년 한 해 동안 나주에서는 지난 11월말 기준으로 40여건의 공연이 이뤄졌다. 이 가운데 14건은 기획공연으로 국내외 유명 음악인과 연극인 등을 초청,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공연문화의 진수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기획공연을 중심으로 공연내용을 살펴보면, 무지크바움에서 주최한 공연이 3월에 열린 ‘12인의 첼로앙상블’ 공연을 비롯해서 ‘4인4색 현대창작작품’ ‘메시앙 탄생 100주년 기념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플라멩코’ 그리고 오는 20일 밤 은희와 나주소년소녀합창단이 펼치는 ‘White Christmas' 공연 등 모두 10여건에 이른다.

여기에 나주데일리앙상블과 나주음악협회 등 지역 음악단체가 1~2건, 빛소리오페라단의 ‘오페라 장화왕후’ 등 음악공연과 함께 한강아트컴퍼니의 ‘염쟁이 유씨’와 사다리움직임의 ‘휴먼 코메디’ 등의 연극 몇 편이 그나마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공연의 공통점은 모두 공짜공연에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지워 받아 추진된 공연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문화예술진흥기금이니 복권기금 등이 지원되기는 했지만 올 한 해 나주시가 이같은 기획공연에 지원한 예산이 21억원에 이른다. 공연단체의 자기부담금이나 순수 민간차원의 후원은 ‘새발의 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이다.


기업의 메세나 운동, 먼 나라 얘기인가?


광양시가 전남도내 자치단체로서는 처음으로 지난 7월부터 기업과 예술의 만남을 통한 Win-Win 파트너십 구조를 마련하기 위해 ‘광양 메세나운동’을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메세나’란 고대 로마제국시대에 시인이나 예술가 후원활동을 하였던 재상인 ‘마에케나스’의 이름에서 유래돼 지금은 이타적인 목적의 ‘예술 후원자’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고 있다.

광양시는 이같은 메세나의 의미를 살려 기업의 경영 이미지를 홍보하고, 문화예술단체는 기업에 필요한 서비스 제공과 시민에게 다양하고 질 높은 행사를 제공하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등 기업과 문화예술단체간의 ‘커플 매니저’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지역의 현실은 어떤가? ‘플라멩코’ 공연의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에게 “참 좋은 일 한다”는 말을 건네자 “지난봄에 한번 후원을 하고 이번에는 하지 않았는데 이름이 들어갔다”며 “면목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후원단체로 들어간 시민단체며, 언론사, 기관․단체 등도 결국 ‘마음뿐’인 후원을 하고 있다는 셈이다.

한 때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 후원을 해온 LG화학 나주공장도 최근 들어서는 그 이름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 되고 말았다.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 결국 경기불황과 타산성에 견주어 메세나 운동은 요원한 과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펼치고 있는 ‘메세나 운동이’, 울산시 북구합창단을 지원하고 있는 신아정기(대표 정신순)와 같은 업체의 메세나 활동에 우리지역에서도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