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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이야기

[스크랩] 일제 강점기에 사라진 나주동서부줄다리기

by 호호^.^아줌마 2009. 2. 6.

정초에 시작, 20일경에 끝나는 대규모 민속놀이 

 

영산강 문화축제 때 열렸던 나주동서부줄다리기 모습

 

나주에서 행해진 줄다리기로 커다란 줄을 제작하고 여기에 온 고을 사람들이 동·서로 나누어 참여했던 대단위 줄다리기였다.

 

이 동서부줄다리기는 돌싸움과 장대놀이로 시작되는데, 어찌나 성행했던지 다치는 사람이 많아 위험한 놀이라 하여 없어지고 줄다리기만 성행하게 되었다. 놀이는 정초부터 시작해서 20일경에 끝이 났다니 그 규모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먼저 읍내 동쪽에 사는 사람과 서쪽에 사는 사람들이 동서로 나뉘어 각기 마을 집집마다 새끼줄을 추렴하고 인원도 동원한다.

 

아녀자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줄다리기를 할 때 먹을 주먹밥을 만들기 위해 쌀을 거둔다. 이때 새끼줄이고 쌀이고 거절하는 이가 없었다. 양쪽은 각기 가가호호에서 거둔 새끼줄로 각기 길이 300m, 앞부분 굵기 30cm쯤 되는 커다란 줄을 틀고 고를 만드는데 서부가 남성의 고를, 동부가 여성의 고를 만든다. 줄의 크기는 줄 위에 앉으면 발이 들릴 정도였다고 하니 그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처음에는 현 경찰서 앞 빈터에서 행하다가 그 후 세무서 앞의 대로(나주읍성내의 중앙부에 해당됨)로 옮겨 행해졌다. 양군이 줄다리기를 시작하면 수십 마을에서 농악대가 나오고 수천 명이 동원된다. 고를 걸때는 서로 팽팽해서 5,6일이나 걸릴 때가 있는데 남녀노소가 잠을 안자고 기를 쓴다. 이렇게 해서 승부가 나면 이긴 편은 승전고를 울리고 삼현육각을 잡히며 말을 타고 집집을 돌아다니면 집주인들이 술과 음식, 돈을 내놓고 서로 기뻐했다. 게다가 이긴 편에는 나주목사가 그 해의 부역을 면해주기 때문에 더더욱 큰 승부였다.

 

나주출신 소설가 오유권의 ‘방앗골 혁명’에 나주의 동서부줄다리기 장면이 등장하는데, 예전에 행해지던 줄다리기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온 고을 사람들이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같은 집안이라도 소속이 다르면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에는 말도 하지 않고 지냈을 정도로 그 승부를 크게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승부에 막바지에 다다르면 처음에는 청년들만 나섰다가 자기 편이 조금 끌려가는 듯하면 아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줄에 달라붙어 줄을 당기면서 이기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이긴 편의 행세는 대단하였다.

 

보통 정월 보름날의 민속놀이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성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지만, 나주의 동서부줄다리기는 서부 측 남성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아마도 이는 농사에 남자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놀이는 일제강점기까지도 성행했는데 일본인들이 군중이 모여 단체경기를 하는 것을 꺼려 중단시켜 버렸다. 지금은 마을별로 소규모로 행해는 곳이 있을 뿐 나주인 전체의 줄다리기는 맥이 끊기고 말았다.

 


 

출처 : 호시탐탐(好視探貪)
글쓴이 : 먼 발치 매운 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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