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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작은 친구들

by 호호^.^아줌마 2009. 4. 10.

 

작은 친구들

                              

 

생활고에 시달린 주인이 가축 중 하나를 희생시키기로 했다. 냉혹한 처분이 쉽진 않았을 터, 독한 맘을 먹고 맨 먼저 소를 째려봤다. 소가 정색을 하며 자신의 도움이 없으면 주인님 혼자서 힘든 농사일을 할 수 없으실 거라 했다.

 

이번엔 말을 째려 봤다. 말 또한 당당히 대꾸했다. 자신이 없으면 주인께서 어떻게 저 먼 거리의 읍내까지 나가실 거냐는 이유였다. 고개를 닭 쪽으로 돌리자 날마다 목청 가다듬어 깨우지 않으면 어떻게 곤한 잠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실 거냐고 벼슬 빳빳이 세웠다.

 

마지막으로 돼지를 쳐다보자 돼지 왈, “뭘 봐? 빨리 솥에 물 끓여!”하더란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가축들과 얽힌 이 우화를 한바탕 웃음으로 흘릴 수 없다. 먹여 기르는 가축이 주는 혜택뿐이겠는가. 자연이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푸는 생태계 서비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 때문이다. 생태계 서비스란 경제학에 환경가치를 포함시킬 때 사용되는 개념인데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을 계량화한 것이다. 그동안 그들이 주는 혜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공짜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파괴되면 막대한 자원을 들여 대체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벌 같은 곤충들의 가루받이 매개 활동이니 배꽃 흐드러진 요즘 풍경에 마음 심난함을 감출 수 없다.

 

꿀벌과 꽃나무와 인간의 상호작용은 절대 완벽하게 해체하여 설명할 수 없지만 핸드폰의 전자파가, 유전자 조작 작물이, 바이러스 오염이, 살충제남용이, 열악한 사육환경이 가하는 스트레스와 영양결핍 등등, 이유가 한 둘 아니란다.

 

급기야 2006년 겨울에서 이듬해 봄까지 북반구 꿀벌의 4분의 1이 사라지는 미증유의 사건이 발생하자 양봉업자들은 다리 여섯 달린 가축을 트럭에 실어 수 천 킬로미터를 오가는 날품을 팔았다. 이른 바 ‘미친 벌 병’이라는 이 현상의 정확한 원인은 그저 추측일 뿐으로 결론은 ‘모른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12년 전 우리 집을 막 지었을 때 온갖 종류의 나비가 날아들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해가 가면 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드는 작은 친구들의 방문이다. 손님은, 특히 어린 손님들은 주인의 소홀한 대접에 민감하다.

 

이러다가 우리는 이 지구라는 거택에서 그동안 유형무형의 도움 주던 이웃의 발길 끊긴 채 말 그대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이를까 바짝 겁이 난다. 무엇이 그 작은 친구들의 맘에 상처를 주었을까. 곰곰 되새겨보는 화창하지만 쓸쓸한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