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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

나무 위의 새를 바라보는 예수 - 이중섭(평원, 1916-1956)

by 호호^.^아줌마 2009. 8. 8.

나무 위의 새를 바라보는 예수- 이중섭(평원, 1916-1956)

 

    시대의 아픔으로 평생을 외롭게 살며 죽음도 홀로 맞이했던 화가

   지난 연초에 올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를
'이중섭(평원, 1916-1956)의 소 그림들'로 응원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쉼'이 필요할 때면, 더 더욱 생각나는 '이중섭의 판잣집 화실
'도 소개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 감상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이 기회에 함께 점검해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이중섭의 그림들 가운데 제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또다른 그림 한 점을 오늘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앞에서도 소개하였으므로, 이중섭의 약력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만 정리합니다. 호가 대향(大鄕)인, 이 중섭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군조운면 송천리 742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농의 가정에서 삼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던 그가 5세가 되던 해인 1920년에 아버지께서 별세하십니다. 1929년 부유했던 외가에 살면서 평북 정주에 있는 오산 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이 때 평양 일대의 고구려 벽화들을 보면서 미술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합니다.

   19세 되던 해인 1934년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포기, 그 이듬 해인 1935년에 도쿄에 있는 문화학원에 입학하여 1940년 졸업하였으며, 일본 화단의 미술창작가협회에 "소와 소녀"와 "불상"을 출품하여 협회상을 받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이 때부터 이미 '소'와 관련한 그림들이 주목받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서울 화신백화점에서 창립전을 갖기도 하였으며, 미술창작가협회전에 역시 '소'와 관련한 그림, "소와 어린이"를 출품하여 천재화가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던 1945년, 일본 여인, 이남덕(이중섭이 지어준 한국이름)과 결혼하여 큰 아들을 낳았습니다.

   구상의 시집 "응향"사건에 연루, 표지그림의 화가로 문초를 받았으며, 그 해 첫 아들을 디프테리아로 잃는 슬픔을 겪습니다. 1950년, 원산 신미술가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2월 6일 남하하여 그 다음 해에는 제주도로 내려갑니다. 1952년, 2월에는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으나, 부인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이들을 데리고 도쿄로 건너가고 맙니다.
 
   이 때부터 이중섭의 외로운 생활이 시작됩니다. 1954년에는 화가 박생광의 초대로 진주에서 작품을 제작, 6월에 대한미술가협회전에 그 유명한 "달과 까마귀"를 출품하였으며, 1955년에는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과 대구 미공보관에서 개인전을 가질 만큼 열정적인 활동을 보여줍니다.

   그러던 41세 되던 해인 1956년, 불규칙하고 자학적인 생활로 영양실조에 간장염까지 발병, 청량리 뇌병원 무료환자실에 입원합니다. 이 때 간장염 치료를 위해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하였으며, 9월 6일 오전 11시 45분,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가운데 홀로 외롭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1960년, 부산에서 최초의 유작전이 열렸으며,
1997년에는 제주도 서귀포시가 이중섭이 살던 집을 복원하여 서귀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미술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그 갤러리에서 40주년 회고전 및 화집이 간행되었으며, 그 후로도 정부와 문화 관련 부서의 지원 속에 계속해서 이중섭을 기리는 특별전이 개최되어 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블로그를 통하여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음은 물론입니다.

 

                       ▲ 이중섭, 나무 위의 새를 바라보는 예수, 종이에 크레파스, 1955

   이처럼 그리 순탄지만은 않은 삶을 살았던 화가, 이중섭은 합판에 유채,  종이에 연필과 수채,  종이에 잉크, 은박지에 송곳, 장판지, 엽서 등 표현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 실험정신을 보여줍니다. 궁핍한 경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으며,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담배의 속지에 그린 "은지 그림"은 표현에 있어 독창성의 절정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그림과 아이들 그림의 큰 대조, 엽서그림과 닭그림의 작은 대조가 이중섭의 '그림 전개 과정'에 있어서 큰 틀을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또한 그것은 "거대한 실체인 소의 해체 과정이요, 하나에서 여럿의 세계로 나아가는 증식과정"이라고도 분석합니다.  


     이중섭이 이 '새를 바라보는 예수'를 그린 진짜 의도는 ?


   위 작품은 이중섭이 사망하기 바로 한 해 전인, 1955년에 그린 "나무 위의 새를 바라보는 예수" 란 제목의 작품입니다. 이중섭의 그림 속에서 만나는 예수의 모습이 인간적이면서도 무척 새롭게 다가와서 눈여겨 간직했던 작품입니다. 언뜻 보면 이색적이기도 하고 낯설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독특하게도 이 작품은 종이에 크레파스로 그린 많지 않은 그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중섭의 그림들에 비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이의 마음으로 그림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매우 정감어린 느낌이 들며, 그 감상도 역시 무척 독특한 느낌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그림과 제목을 보는 순간, 성경의 인물 가운데
삭개오(Zacchaeus)란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관련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먼저 읽고 관련 장면을 머릿 속에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 : 1-10)

       

   예수의 모습을 보고자 뽕나무에 올라갔다가 예수를 만났던 키 작은 삭개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는 뽕나무에 올라 간 삭개오를 우러러 보십니다.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고 부탁하신 것으로 보아 무척 다정한 표정으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예수의 그런 애정어린 시선이 위 그림에서도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감상 소감은 어떤가요. 예수의 인자한 표정이 느껴지나요. 나무 위의 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나요.

   진한 보라색 같기도 하고, 진한 가지색 비슷한 나무 가지의 색채와 그 색채가 주는 명암, 그리고 배경으로 덧칠해진 옅은 가지색 하늘이 통일된 감각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무척 성스럽게 보이고, 감상하고 있는 관객과 독자의 마음을 조용하고 숙연하게 만듭니다.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림입니다.  


                                                                                                                                                          ▲ 이중섭, 나무와 달과 하얀 새, 1955

   위 두번째의 "나무와 달과 하얀 새" 그림은 오늘 소개하는 주요 작품과 매우 유사합니다. 연작 그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구성과 구도, 주요 소재의 배치와 전체적인 분위기까지도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교, 감상할 수 있도록 함께 소개한 것입니다.

   화폭 전체에서 그 구성을 보면, 큰 나무 가지 위에 자그마한 새 둥지와 세 마리의 새가 있고, 그 나무 아래 예수가 나뭇 가지 위에 앉아 있는 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예수는 새를 부르며 기다리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며, 또 다르게 보면 새들과 대화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원형의 미의식'을 통하여 한국의 미를 표현한 이중섭의 화풍

   그리고 그 구도를 보면, 큰 나무와 그 나무 가지를 주요 주제로 그려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지들이 화폭 중앙을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둥글게 뻗어 있는 것처럼, 구성하였으며, 그 둥근 중앙에 뻗은 작은 가지에 두 마리의 새를, 그 오른 쪽 아래에 작은 화면을 할애해서 예수를 아주 작게 조연으로 배치하였습니다.

   이중섭의 작품들을 전체적으로 살펴 보면, 이렇게 "원형" 그 자체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림의 주요 소재로 선택했던 실제 재료들을 뽑아보면, 그런 특징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1999년 동아신춘문예에 발표한 전인권의 미술 평론에 따르면, "이중섭 예술의 기본 구조와 특성"을 "종족적 미의식(種族的 美意識)"에서 출발하였다고 해석합니다. 또한 이것이 이중섭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규명합니다.

    위 두번째 그림에도 그려 넣은 "둥근 보름달"을 소재로 선택하였습니다. 이를 비롯하여 '둥근 호박', '둥근 모양의 꽃', '둥그런 천도 복숭아'와 같은 둥근 물상을 화면의 중심에 즐겨 배치하는 "원형의 미의식"을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의 위 그림들처럼, 화면 전체가 원형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이중섭이 말년에 보였다고 전해지는 원형광태(圓形狂態)란 특이한 정신병(?)적 증세와도 일맥 상통합니다. 원형에 열광한 이중섭의 이런 특이한 태도는 예술의 핵심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이중섭 예술의 전개 과정은, 가족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열망과 분단된 민족이 한민족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런 원형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미에 충실한 한국의 화가였고, '한국의 미'가 "궁극적인 예술의 모습(prototype)"임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중섭의 원형은 이처럼 가족적(종족적)인 동질성을 전제로 하며, 잃어버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자, '처절한 추구'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한국적이고 자신의 가족을 지극히 사랑했던 이중섭 예술의 표현 양식은 근대적이면서도 현대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이중섭의 단아한 그림을 감상하였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평안해지는 이중섭의 그림 한 점 감상하면서, 이웃지기님들과 애독자들, 그리고 방문자들 모두 행복하고 편안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