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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

선한 예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by 호호^.^아줌마 2009. 8. 10.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선한 예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45.6×55.7 한지에 수묵. 1993, 문순

 
나는 기독인이다.
선택이든 예정이든 나의 현실은 기독교인
나는 엄청나게 예수를 사랑한다.

천국이나 휴거의 구분된 선택됨을 위한
조건적 믿음이 아닌, 욕심없이 나는 그 분을
엄청나게 사랑하며 산다.

Because of my God (=Jesus)
나의 삶은 늘 자유롭다.

늘 느끼며 사는, 늘 확인하며 사는 그 분을
나는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지금보다 더욱 많이 예수의 사랑을 사랑하는 것,
...나의 욕심이 되어 버렸다.

 

<작가의 말>
너무도 괴로웠다. 기쁘게 예수님을 그리겠노라고 다짐했지만 예수님의 그림은 너무 힘들었다.

마음은 기쁨으로 넘치는데 손끝으로 나오는 나의 무능력함이 나를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답답함이 가득 밀려왔다. 새벽녘에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그림에 대한 처절한 좌절 속에서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지 말까.. 그리지 말자... 그러나 그리고 싶은데... 계속되는 후회와 열정이 번갈아 가며

가슴을 치고 쓰린 속을 쓸어내렸다. 어떻게 하지...

 그러나 후회와 좌절이 열정을 이겨내지 못한 밤이었다. 그려야지. 그릴거야. 그릴 수 있을거야.

이러한 생각 끝에 그 다음의 방법은 오직 하나, 기도였다.

그러나 무작정 기도는 머리 속에서만 맴돌았고 기도마저 힘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찬송하자.. 새벽녘, 힘차게 부르지도 못한 간절함의 찬양은 그분의 마음을 움직이셨나보다..

찬양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싶은데 그려지지 않는 안타까움, 그러한 기도 끝에서 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해 기도할 수가 있을까. 기도가 마치 사기를 치는 듯, 괴로움을 몰고 왔다.

기도를 했지만 그 엄청난 두려움의 마음은 계속 나를 괴롭혔다.

찬양을 하고 기도를 했다고 다 그려지나..

그렇게해서 그려질 수 있는 그림이라면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러나 기도했다. 기도는 살아계신 주님을 부르는 간절함이니 다만 기도했다.

그리고는 다시 하얀 한지 위로 나의 시야를 고정시키고 붓을 잡았다.

 인물은 눈을 가장 먼저 그리는데.. 언제나 눈을 그릴 때는 숨이 멎는다.

단 몇 분의 시간에 눈은 그려진다. 숨이 멎어지고 손이 떨려지고.. 단숨에 그려간다.

이미 한 장을 멋지게 엉망으로 그리고. 한숨을 쉬며 탄식했던 나. 다시 시작이다, 시작이야...

 

 그 순간, 나는 평생에 잊지못할 주님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향해 들려주시던 말...

"네가 나를 그리니 내가 너무 기쁘다."

 
 지금도 한 순간도 주님의 그음성을 잊지 않는다.. 주님이 기쁘시다는 말씀..

나는 순간적으로 환희의 심정이 되어 주님의 눈을 그려갔다.

나를 기뻐하시며 나를 향해 웃어주시는 그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순간적인 붓놀림을 해나갔다.

바로 이러한 나의 심정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담담히 웃으시며 건네시는 표정으로 주님이 완성되어갔다.. 

 "진실로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내가 너를 위하여 죽었노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하루라도 가름해 보았느냐?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을 네게 주기 위하여 내가 왔는데 이것들을 아느냐? 이것들을 네가 믿느냐?

진실로 진심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때로 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다가와 건넨다, 예수 그림 안그리면 안되냐고..

그러나 나 역시 단호하다. 어떻게 안그릴 수 있는 그림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한다.

네가 가진 것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고 하시던 주님의 음성..은 살아있다.

그 목소리는 늘 깨어 나의 온 심령을 움직인다. 부인되어질 수 있는 음성이 결코 아닌 것을....

나의 그림 속에 녹아져, 표현되어져 세상 가운데 보여져야만 하는 그림인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또 그린다. 그린다는 행위는 내게 있어 독백의 찬양, 독백의 기도이다.

**1994년 12월, 인사동 서호갤러리에서 나의 첫 개인전에 이 그림으로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그림의 포스터는 거의 다 뜯어겨 없어졌었다.

매일매일 나는 포스터를 붙이며 전시를 하였는데 어느날, 법복을 입으신 여승이 전시장으로 올라왔다.

 (그때 당시 서호갤러리는 2,3층) 예수의 그림을 그리는 나는 법복의 여승을 참으로 반갑게 맞이하였다.

여승은 이 그림의 포스터를 사고 싶어서 올라왔다고 하였다.

여승이 예수의 그림 포스터를 산다는 것이 못내 반가워 들어오시라고 차 대접을 한다고 하였지만

여승은 다른 그림은 안보아도 된다며 굳이 이 그림의 포스터를 두 장 사가지고 떠났다.

물론 돈은 받지않고 드리면서 나는 물어보았다.

 

스님이신데 왜 이 그림을 사시러 올라오셨느냐고.

"눈매가 좋아서요... 내 마음을 다 아신다고 하시는 듯해요."

 

 

가져온 곳 : 
카페 >화해의 시간
|
글쓴이 : 수묵화| 원글보기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내 영 기뻐 노래합니다
이 소망의 언덕 기쁨의 땅에서 주께 사랑 드립니다
오직 주의 임재 안에 갇혀 내 영 기뻐 찬양합니다
이 소명의 언덕 거룩한 땅에서 주께 경배 드립니다
주께서 주신 모든 은혜 나는 말할 수 없네
내 영혼 즐거이 주 따르렵니다 주께 내 삶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