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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꼽다라시

by 호호^.^아줌마 2009. 9. 14.

 

김현임 칼럼…꼽다라시


아뿔싸! 열심히 응원하던 홈팀이 졌다.

연고팀의 패배로 끝나는 야구 중계가 있는 날이면 나는 슬금슬금 남편의 눈치를 살핀다.

 

나름대로 비위 맞춰도 툴툴거리는 남편을 향해 그 팀이 이기면 당신에게 밥이 나오느냐, 떡이 나오느냐 결국 말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긴 어떤 대상을 향한 우리의 꼽다라시한 응원이 한둘이던가.

 

‘꼽다시’는 ‘고스란히’에 대응하는 경상도 고장 말이란다. 사투리를 이르는 ‘고장 말’이 반가워 읽다가 얻은 넉넉한 덤이 꼽다라시다.

 

 ‘꼽다라시’는 ‘축나거나 변함이 없이 그대로 온전하다’는 의미가 있는 ‘곱다랗다’의 어간 ‘곱다랗-’과 부사를 만드는 ‘-이’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 꼽다시는 꼽다라시의 준말이니 우리는 홈팀을 꼽다라시 응원한 셈이다.

 

‘바람 불어 쓰러진 산 있으며 눈비 맞아 썩은 돌 있었느냐’는 변함없는 사랑을 맹세한 옛 시조 대목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을 능가하는 애사(愛詞)는 없다.

 

그런 눈 정(情)에 걸린 대상에게는 어떤 장애에도 맹목적 본능 가까운 계산 없는 뒤밀음으로 일관한다. 휘황한 왕관도, 저를 길러 준 부모도, 완고한 틀의 도덕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마음 쏠림, 상대를 향한 꺾이지 않는 순정(純情)이다.

 

꼽다라시, 내겐 그 말의 어감이 어쩐지 서글프다. 그림 속 학(鶴)이 날아갈지언정 어찌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접겠느냐 던 그대의 언약은 어디로 갔는가.

 

산천(山川)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이요,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라는 추구집의 경구를 들먹일 것도 없다.

 

제 처한 상항에 따라서 손바닥 뒤집는 인정이 고금(古今)을 따질 것 있던가. 반면 의리로 치자면 으뜸인 사나이가 예양이다.

출신도 그가 주군으로 섬겼던 두엇의 함자도 다 생략하자.

 

어쨌든 그들을 떠나 마지막으로 예양은 지백을 섬겼다. 지백을 향한 조양자의 골수에 사무친 원한 때문이라던가. 불행하게도 자신의 상전인 지백의 두개골은 조양자의 요강으로 전락한다.

 

이에 예양은 때론 뒷간 벽을 바르는 죄수로, 흙투성이 걸인으로 위장하여 조양자에게 복수의 칼을 겨눈다. 예양의 올곧은 마음에 감동한 조양자는 용서를 거듭하고, 그럼에도 복수의 행보를 멈추지 않는 예양이다.

또다시 사로잡힌 예양은 마지막 간청을 한다. 제발 조양자의 벗은 옷가지에라도 칼질하게 해주라고.

 

예양이 모신 이가 한둘 아니었건만 오직 지백에게만 그토록 목숨 건 충성을 바치는 연유를 묻자 “그들은 모두 저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우했습니다. 그러나 지백님께선 저를 국사(國士)로 대접했습니다. 이에 저도 국사로서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칼자국 난자한 조양자의 옷가지 위로 예양은 자결했다.

 

고사대로라면 자신에게 베푼 은혜의 폭에 비례한 보은일 터.

 

분명히 밥도, 떡도 나오지 않건만 내일도 어김없이 기아의 상대팀을 향해 무차별 언어의 독화살을 날릴 태세, 예양 못잖은 꼽다라시한 충정의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