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추석맞이

by 호호^.^아줌마 2009. 9. 22.

 

김현임 칼럼추석맞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보라색 구절초도 그렇다. 하지만 우연히 마주친 가을 풍경 중 담벼락 휘늘어진 대추나무만큼 탄성 터지게 하는 게 있을까.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대추 알맹이에 절로 침이 고인다. 다른 건 몰라도 내겐 먹을 것에 관한 깊은 한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과실 향기 물씬 거리는 추석 무렵쯤이면 새콤달콤한 사과 내음만으로도 나는 휘청 현기증이 난다.

 

 “아짐, 올베쌀 좀 부탁하요”

이웃의 추석빔 준비에 입 안 가득 고이는 침과 함께 허기증의 환처럼 내 머리 속 가득 두둥실 떠오른 한가위 달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장(長)’의 해석인 ‘길게’가 빠졌을 뿐, 819년에 김매순이 지은 ‘열양세시기’에는 ‘가야물(加也勿) 감야물(減也勿) 단원장사가배일(但願長似嘉排日)’로 1843년 유만공의 ‘세시풍요’에 ‘무가우무감(無加又無減) 장여가배일(長如嘉排日)’로 등장하는 꽤 뿌리 깊은 말이란다.

 

이제 양보다 질을 따질 정도로 먹을 것에 관한 근심은 옛일이 되었다. 보릿고개란 말도 진즉에 사장됐다. 더불어 오곡과 갖가지 과실이 곳간 가득 넘치는 한가위에 대한 간절함도 사라졌다. 하니 ‘옷은 시집 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 때처럼’하던 옛 사람들의 기원말도 이제는 아득한 옛 속담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풍족한 대명절을 코앞에 두고 나는 이 무슨 청승인가. 요 며칠 내내 ‘아프리카 식 빚 갚기’란 말이 입에서 빙빙 돈다. 

 

먹을 물 한 동이 기르기 위해 하루 몇 십리를 걷는다했다. 열사의 사막을 터벅터벅 맨발로 걷던 오지 소녀의 바짝 마른 몸피를 화면으로 접한 후부터 나는 함부로 물 쓰는 일이 두려워졌다.

 

식사는 하루 한 끼로, 나머지는 맹물을 마시며 버틴다는 눈 꺼먼 아이들의 사연에 그동안 무례했던 밥에 대한 감사와 엄숙함을 되찾았다.

 

오지의, 미개인이라 지칭되는 종족들의 빚 갚기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감동적이었다. 한 사람이 빚을 지면 그 사람의 사돈네 팔촌까지 합심하여 빚을 나눠 갚는다는 이른바 ‘아프리카 식 빚 갚기’다.

 

어쨌든 빚은 실패의 산물, 자신의 위험허용수준을 간과한 어리석은 결과다.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에서 ‘변동성이 크다’라고 하면 이익이 날 가능성과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의 차이가 큰 것을 말하는데 즉, 이익을 얻으면 크게 얻고 또 손실을 보면 크게 잃는다는 것. 이런 투자의 위험성을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위험허용수준’이다. 자신의 이런 위험 허용수준을 안다는 것은 투자전략의 50%를 이미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라는데......

 

당신의 지나친 욕심 탓이라 타박만 할 수 없다. 성공도 실패도 오리무중, 도대체 짐작할 수 없는 인생길의 안내를 도운다는 도조신(道助神), 그를 만나기 쉽던가. 그러니 우리의 도처에 자리한 수렁에서 어찌 안전을 장담할까.

 

생활고로 인한 자살이 적지 않은 요즘, 때마침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결이 예사롭지 않다. 이런저런 경제 사정으로 을씨년스런 명절을 맞을 수밖에 없는 형제, 자매, 이웃에게 감히 아프리카 식 빚 갚기를 꿈꾸어 본다. 그래서 오손도손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는 추석이 될 수 있다면.

'우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려한 지방을 위하여  (0) 2009.09.26
이정강 소장의 인권이야기   (0) 2009.09.22
김현임 칼럼…꼽다라시  (0) 2009.09.14
김현임칼럼… 손가락   (0) 2009.09.06
올 가을엔 배경지식을 넓혀보자   (0) 2009.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