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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나는 이제야 세상을…

by 호호^.^아줌마 2009. 11. 7.

김현임 반가(畔佳) 옆길(2009. 11. 7. 해질녘)

 

 

 나는 이제야 세상을…


김현임

 

장자연, 최진실, 정다빈, 유니, 이은주...... . 몇 년 사이 우리 곁을 떠난 여성 연예인들이다. ‘서럽게 세상을 뜬’이라 표현되었던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자면 스스로 제 생의 줄을 끊어버린 여자 연예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씻김굿 행사였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벌인 이 굿판에는 행인과 외국인 등 100여명이 함께 했다고 한다.

 

때 마침 동종의 신문에 7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 이화시 씨의 인터뷰 기사가 그녀의 환한 얼굴과 함께 실렸다. 명장으로 꼽히는 고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에 출연하여 각광을 받았으나 그 뒤 출연한 영화가 사전검열에 이어 개봉이 늦어지면서 좌절, 결국 도망치듯 결혼해 스크린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시대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은 시대와 화해하지 못했다.’는 말이 한 여배우의 좌절과 절망을 제대로 위로할 수 있을까. ‘그녀 얼굴에 흐르는 퇴폐적 색기가 당시 고위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고 그로 인해 출연작의 개봉이 지연되었다’는 게 당시의 진실,  ‘그 영화는 고촌에 누각을 짓고 모든 장면을 세트에서 촬영한 야심작이어서 나는 이제야 세상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휘청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는 당시를 회상하는 여배우 의 말이다.

 

 ‘나는 이제야 세상을 잡았다.’는 말이 주는 눈 환해지는 희망적 느낌과 ‘결국 휘청거릴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가 주는 눈앞 캄캄한 절망감, 그 큰 격차가 어지럽다. 인생은 한 판의 연극이라 했다. 그렇다면 배우라는 신분에서 자유로울 이 그 누구랴.

 

하지만 여성 상위시대 운운하는 요즘도 세상이란 무대에서 한 여자로 올곧게 서기가 참으로 곤고하다. 가사, 육아, 직장 어느 면에서나 완벽한 알파걸을 요구하는 시대 상황이 그렇다. 제 아무리 실수에 실수를 거듭해도 남자, 그들에겐 너그러웠다. 매사에 관용으로 넘어가는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리는 건 언제나 남자들이다.

 

그와는 달리 그들 말대로 약한(?) 여자가 피곤에 지쳐 살짝 흐트러져 걷는 걸음 한 발짝에도 기다렸다는 듯 맹공격, 총공격이다. 게다가 걸핏하면 ‘-- 한다 카드라’식으로 횡행하는 숱한 오해는 또 어떻구!

 

무차별 공격하는 적진에서 고립무원에 빠진 포로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해서 상처투성이로 피 흘리며 쓰러지는 비참함보다는 제 스스로 저를 거두어들이자는 무모한 결심, 그 마지막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녀들이었을 게다.

 

아직도, 아직도 여자들에겐 열악한 환경인 이 사회다. 죽음을 무릅쓴 노동이라 했던가. 쩍쩍 갈라진 발바닥과 시뻘건 핏자국에 물든 어깨로 하루 종일 매달린다는 방글라데시 치타공 해안의 폐선해체 노동자들, 그  심정에 빠질 때가 많다. 미화도, 동정도 사양한다.

 

다만 여자란 말이 더 이상 약자라는 어감으로 들리지 않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세상을 제대로 잡았구나!’ 하는 기쁨 가득 찬 말을 번복하는 여배우가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