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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달빛 흐르는 강

by 호호^.^아줌마 2009. 12. 14.

 

김현임 칼럼달빛 흐르는 강

 

흐르는 물처럼 사람의 마음을 고즈넉하게 만드는 게 있을까.

잠 안 오는 여름밤, 딸과 함께 강가를 거닐며 부르던 문 리버는 감미로웠다. 또한 뭔가 중요한 결정을 앞둔다든지, 이런 저런 일로 심사가 뒤틀릴 때마다 강물은 나의 넉넉한 상담처요, 위로처가 되어 주었다. 이 모두 영산강 줄기가 바라다 보이는 마을에 사는 홍복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는 강은 너무 끔찍했다. 시커먼 강물에서 누군가 잡아 버려놓은 허리 휜 물고기는 서글픔을 넘어 공포감마저 주었다. 갈대밭 틈바구니에 누군가 잔뜩 쌓아놓은 썩은 생선 상자의 악취와 강둑 곳곳에 버려진 폐가재도구들, 그리고 농약병과 둥둥 떠다니던 비료포대들은 속수무책의 나를 우울함의 수렁으로 내몰기도 했다.

 

오폐수의 거품이 이는, 말기 환자처럼 앓고 있는 행태의 강물을 흐르게 하자, 막힌 하구언 둑을 트고 바닷물이 유입되게 하자는 영산강 뱃길 복원 사업의 추진이 어찌 반갑지 않으랴. 이곳의 특산물인 웅어가 뛰놀게 해야 한다는 말에도 구미가 당겼다.

 

언젠가 황포돛배를 탔을 때 스친 정자의 절경도 좋은 관광자원이 될 것이고, 여러모로 지역경제에도 청신호려니 쌍수 들어 환영할 만 했다. 그런데 다들 왜 이리 반대가 극심할까. 그들이 들이미는 각양각색의 갖은 이유를 그저 딴지 거는 훼방꾼들의 작태려니 그저 한시바삐 강복원의 사업추진이 탄력받기만을 앙망한 나다. 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밭갈이에만 열심이던 태평성대의 옛 농부까지는 아니었지만 정부가 내놓은 청사진을 액면 그대로 믿는 선량한 국민인 내 고개가 갈수록 갸우뚱해진다.

 

‘당신을 위해서 그것을 만들어 놓을께’, ‘I will fix one for you’ 신문 속 일일영어, 그 아름다운 문장마저도 오늘의 내겐 상 찌푸려지며 읽힌다. ‘오로지 국민을 위하여’야말로 현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내건 숭고한 기치다. 그게 아닌가 자꾸 의심으로 갸웃거려지는 작금, 대규모 토목사업에 국가재정이 휘청거려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나라들이 한 둘이던가. 그런 사태로까지 확대되는 내 염려니 이 또한 어리석은 나의 한낱 기우였으면 싶다.  

 

인도인들은 그 강을 일러 ‘강가’ 즉 ‘모든 이들의 어머니’라 부른다던가. 힌두교 신자들에겐 갠지스강은 성스러운 강, 영육의 더러움을 정화해주는 강으로 숭배된다. 사체를 태우는 화장(火葬)의 연기로 생과 사의 풍경이 함께 어우러지는 바라나시 강변에서 몸을 씻는 순례자만 수만 여명, 강은 더러움을 씻어주는 강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강’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목표는 영산강과 마찬가지로 갠지스강 수계(水界)전체를 살리는 것이다. 오염과 질병의 온상인 강의 정화를 위해 세계은행 총재가 우리 돈 1조 15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단다. 그렇다고 갠지스강 살리기가 성공적으로 이뤄질지는 아직도 미지수. 무턱대고 박수를 칠 수도, 그렇다고 썩은 강을 방관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흡사하다.

 

인도의 각 단체들이 발표한 적확한 진단에 따르면 정부의 철저한 예산 관리와 집행, 그리고 인도 국민의 의식개조만이 열쇠란다. 1985년 ‘강가 행동계획’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인도의 경험은 남의 일이 아니다. 말 많은 4대강의 예산통과를 놓고 일었다는 날치기 논란도 귀에 거슬리고 대형건설사들이 짬짜미 식으로 나눠가졌다는 사업시행권의 보도도 가슴에 뜨끔하다.

 

내 소망은 지극히 간결하다. 맑고 줄기차게 흐르는 강의 본성을 되찾아주자. 매사는 상수여수(上手如水) 아니던가. 부디 물 닮은 투명한 마음으로 행해지기만을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영산강의 맑은 물에 어리는 푸르른 달빛을 보며 ‘Moon river'를 멋지게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