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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칼럼… 세밑에 꾸는 꿈

by 호호^.^아줌마 2009. 12. 22.

김현임칼럼… 세밑에 꾸는 꿈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가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그 해 미당 문학상을 받은 정현종 시인의 ‘견딜 수 없네’라는 시제(時題)를 입에 매달고 살던 때가 있었다. 적막강산에 든 듯 외로웠고, 땡볕 내리꽂히던 여름날처럼 신산한 날들이었다. “젼딜 수 읍네!”

 

전라도식으로 변형시켜 애써 우스개로 포장했지만 어찌 몰랐을까. 시퍼런 기 여전한 내 탄식은 스무 살 내 딸에게 삶의 무게를 얼마나 가중시켰을꼬. 

 

그리도 지루하던 날의 느낌들이 일순 급변했다. 가슴 속에 시한(時限)의 계기를 장치한 듯 촉박감에 시달리는 요즘이다. 그나마 책임감이라는 명분이 지탱해주던 삶에서 놓여난 해방감, 그 후련함은 순간이었다.

 

오랜 억압에서 풀려난 수인(囚人)처럼 한동안 황당했다. 그리고 이어지던 무미건조. 빠져나올 수 없는 곤경에 처한 심정에 휘말렸다. 촛불 곁들인 채식 정찬도 떠올랐다. 오렌지 세 조각에 야채샐러드, 고향집 어머니의 햄버거 한 개, 거기에 신선한 오렌지 주스 한 잔.... 이는 사형수에게 베풀어진다는 마지막 식사 메뉴 아니던가.

 

남쪽 벽의 움푹 팬 공간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다. 그의 몸은 의복, 무기, 홀, 방울, 머리장식, 기장, 금제 및 금동제 복식, 수천 개의 조개 구슬로 만든 가슴꾸미개, 목걸이, 코 장식품, 왕관, 모자이크 무늬의 귀 장식품 등 수많은 부장품들로 덮여 있었다.

 

그 사판왕은 구리로 이어 만든 목관에 안장되어 있었으며 3명의 부인, 2명의 전사, 감찰관에 경호원까지 발이 잘려나간 채로 함께 매장되어 있었다. 이들은 그의 생전 측근들로 추측되며 고대인들은 관습과 신념에 따라 왕이 죽으면 왕과 함께 순장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거느리고 갈 것 없으니 너무 기대 걸 것도 그렇다고 크게 비관할 것도 없다. 점차 빨라지는 시간의 춤 템포에 무언가 귀중한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상실감, 그 두려움을 걷어낸 건 18세기 중인 신분의 시인이 자주 입에 올렸다는 아만(我慢)이란 단어다.

 

 ‘거만한 듯하다’는 오연(傲然)도 좋다. 자신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시대를 비웃으며 ‘나는 나를 벗하지 남을 벗하지 않는다’ 했던가. 시시각각 나를 팽개치고 달아나는 세월의 발을 잘라 낼 재주는 없지만 저 광대한 우주와 맞바꿀 가치가 있다는 내가 아닌가.

 

훗날 나의 유일한 부장품은 내 꿈일 터, 자신의 주검을 순장자들로 두룬 2000년 전 왕처럼 이제 내가 오롯이 돌볼 대상은 나라는 자각이다. 어차피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유한(有限)의 날들이라면 이제부터라도 내가 바라던 나로 살아보자. 고작 지천명 중간에 이런 납회(納會)의 꿈이라면 엄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