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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한가위 유감

by 호호^.^아줌마 2010. 9. 28.

 

김현임 칼럼한가위 유감


 

추석을 이틀 앞 둔 저녁, 귀퉁이가 채워지지 않은 달이 유난히 느긋했다. 수묵을 풀어놓은 밤하늘에 걸린 어슴푸레한 달을 보며 떠오른 것들을 적어 놓았을까.

 

‘달빛에 홀연히 드러나는 산골짜기와 들판, 주막의 호롱불, 빙긋이 웃는 나그네,’ 어느 새 가슴 한 켠에 걸리는 산수화 한 폭이다. 언제고 제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것들이 있다.

 

솔향 그윽한 그곳의 강에서는 여전히 물고기를 낚을 수 있으며, 새는 남쪽을 향해 날아갈 것이며, 젖가슴 드러낸 어머니가 곤히 주무시는 밤이면 슬그머니 뒷산 노루 한 마리 내려올 것 같은 풍경을 간직한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곳, 바로 고향이다.  

 

달 아래 펼쳐지는 이런 환상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이랄까. 14년 만에 처음으로 마당의 감나무는 열매 한 톨 맺지 않았다. 올 봄 유난히 혹독했던 냉해의 여파다. 그 뿐인가. 여름 내내 이어진 지루한 장마로 애호박 하나 얻지 못했다. 이변이라는 말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한반도 특유의 삼한사온(三寒四溫)도 실종된 지 오래다.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받아 도대체 평상심을 기대할 수 없는 여자처럼 돌변한 절기다. 강우량도 예측불허다. 순식간에 100밀리미터에 육박하는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도 예사요. 바닷물이 급속하게 역류해 빠져나가는 이안류가 수십 차례 발생하는가 하면 졸지에 사람을 휩쓸어가는 너울도 심심찮다. 치솟은 수은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것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9월 들어서만 서울에 비가 온 날이 열흘 가깝다고 했다. 일조량, 그러니까 햇볕이 지면에 닿는 시간이 부쩍 줄어 12년 만에 최소치를 기록했단다.

 

기온이 2-3도만 올라가도 생명체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단다. 탄식이나 넋두리는 개선의 여지가 있을 때, 잠시만 견디면 호전될 가능성이 엿보일 때나 할 수 있는 것, 공포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체의 1차 생육조건이라지만 감히 두렵고 무서워 유구무언(有口無言)에 빠진 요즘이다.

 

만 원대를 육박하는 배추와 배도 그렇고 ‘넉넉하기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무색한 장바구니에 휘청거리는 가계부 근심 때문만이 아니다. 봄비가 측은측은 밭을 적시는 일만큼 크고 넉넉한 자비는 없다했던가. 자비의 손길을 돌연히 거두신 자연, 그 위력 앞에서 뭔가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가을은 ‘과일의 아버지’라 했건만 기상이변으로 ‘과일의 무덤’이 되고만 올 가을, 폭등한 채소값에 벌레 구멍 숭숭한 배추 잎사귀 하나 예사롭지 않고 푸른 풀포기의 씩씩한 기상이 새삼 눈에 장하다.

 

갈수록 골 깊어지는 자연과 인간의 불화려니 이럴 때 잔뜩 고조된 서로의 관계를 완만히 조율해주는 노련한 협상가의 출현이 간절하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 한 마리에도, 아슴한 조도(照度)의 호롱불빛에도, 산천의 목숨들과 함께 나누던 변변찮은 먹거리에도 불평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너절해 보잘 것 없음을 이르는 말이 귀지하다란다. 그렇다면 귀지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가 내밀 화평연법(和平演法)의 목록은 무엇인가. 몇 장이고 깜지의 반성문은 필수요, 그동안 넘치도록 누리던 것들에 대한 겸허한 절제, 진심어린 감사함은 우리가 시급히 내밀어야하는 최선의 카드 아닌가.

 

‘새들은 오들오들 떨며 자고 기러기는 젖은 날개 저어 날아오누나. 슬프다. 우리 인생길은 왜 이리 적막한고.’ 정도전 선생의 시구처럼 창백한 달조차 볼 수 없는 우중의 대보름이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