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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이야기

리영희 선생을 추모하며...리영희 평전

by 호호^.^아줌마 2010. 12. 8.

 

나는 전형적인 486세대,

그 세대의 한 모퉁이돌로 살아가고 있다.

1980년대를 지내오면서 내게

 "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무와 의미를 던져 준 몇 사람,

문익환 목사, 리영희 선생, 권영길 씨...

 

1987년도엔가, 광주에서 리영희 선생의 강연을 들었고,

그 이듬해 선생을 비롯한 해직언론인들이 중심이 돼

만들어낸 한겨레신문에

국민주주로 참여하기도 했다.

 

리영희 선생의 타계소식에 가슴 치며

애통해 하는 天崩은 아니라 할지라도 

가슴 한 켠의 보루가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그 무너진 바람벽을 이제 누가 막아줄 것인가?

 

리영희 선생이 오늘 오후 광주 5·18국립묘지에 안장된다.

'민주성지', 바로 그 분을 위한 안식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리영희 선생은 오늘 아침 7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영결식장에서 영결식을 하고,

오전 10시 수원 연화장 화장을 한 뒤 광주로 운구,

오후 4시쯤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 안장을 끝으로

나흘간의 민주사회장이 마무리 될 예정이다.  

 

 


고은 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임재경 한겨레 초대 부사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고,

고광헌 <한겨레> 사장, 김영훈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남윤인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박우정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장이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됐다.

68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장례위에 참가했고,

종교계·시민사회단체·언론계·학계 등을 망라한 장례위원도 500여 명에 이른다.


 

지병으로 입원했던 리 선생은 지난 5일 오전 0시30분께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임종을 맞았다.

차남 건석(46)씨는 “마지막에 가족들이 함께 다 모였고 편안하게 가셨다”며

“(앞서 임종 뒤 망월동이 있는)광주로 가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유지’를 전했다.

 

선생의 유지를 생각하며 그의 평전을 읽고자 한다.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

 

   리영희 평전 

 

김삼웅(지은이)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10-12-10


'사상의 은사'에서 '의식화의 원흉'까지, 한국현대사 참 지성의 봉우리로 우뚝한 언론인 리영희의 파란곡절로 점철된 생애와 사상을 조목조목 짚어낸 평전. 리영희와 오랜 교감을 나눈 후배 언론인 김삼웅이 집필한 책으로, 자서전 <역정>과 <대화>는 물론 십 수권의 저서와 수백 편의 글을 아우르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리영희론'을 수렴하여 정리하고 평한 최초의 책이다.


이 평전은 저자와 리영희와의 깊고도 오랜 교감과 저자의 각고의 노력 끝에 나왔다. 숱한 평전을 써온 저자의 지론대로 '평전은 시비是非를 치우침 없이 다루는 것'이지만 '실명비판으로 악명(?)을 떨친 강준만의 필하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온전한' 리영희인지라 역시 이 평전에서도 비非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있다면 아들, 남편, 아버지로서 가족에게 소홀했다는 것이다.


경남도민일보 기자 김훤주는 "언론인 리영희는 참된 지식을 궁구했고 또한 기꺼이 나누었다. 독서의 넓음과 깊음은 현대사를 통틀어 따를 자가 별로 없고, 그에 바탕을 둔 글쓰기는 비겁한 삶을 각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정의한다. 저자는 '민주와 자유 그리고 오로지 진리에 봉사한 휴머니스트' 리영희의 생애와 사상을 다양한 프리즘으로 조명한다. 

 

<책의 차례>

 

책머리에_ 우상의 칼에 맞선 이성의 펜


제1장 평생을 우상 타파에 바친 이성의 파수꾼

‘리영희인’과 ‘그와는 무연한 사람’으로 나뉘는 세상

루쉰을 글쓰기와 생활의 은사로 삼다

권력의 탄압을 무릅쓰고 진리 추구의 길을 걷다

지식청년으로 무엇보다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다

병마를 딛고 일어나 다시 우상타파에 나서다


제2장 유복한 출생 그러나 고단한 성장

운산에서 태어나 삭주에서 자라다

공무원 아버지와 부잣집 딸 어머니

가족의 ‘민중사’로부터 저항과 비판의 뜻 키우다

서울 유학 중 근로동원으로 학업을 중단하다


제3장 8.15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청년 리영희

고향에서 일제패망과 민족해방을 맞다

혼란기의 서울,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다

해양대학생이 되어 반탁운동을 하다

교사 재임 중 통역장교로 입대하다

전시의 최전방에서 군대의 비리와 모순에 분개하다

청렴으로 일관한 삶, 부친 회갑연도 못 차리다

리영희의 길, 마르크 블로크의 길


제4장 4월 혁명의 격랑에 온몸을 던진 기자의 혼

합동통신 외신기자로 사회 첫발을 딛다

이승만의 폭정을 보며 변혁의 시대정신에 눈뜨다

궁핍을 팔아 기자의 정도를 지키다

《워싱턴포스트》지에 ‘진실’을 기고하고

‘장학생’으로 미국 연수를 가다

이승만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4.19혁명 일선에 나서다

《워싱턴 포스트》지에 혁명의 실상을 기고하다

대학교수들, 학생들이 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다

《뉴리퍼블릭》지에 중립화 문제를 기고하다


제5장 기자 리영희와 군인 박정희, 그 숙명의 대결

5.16쿠데타에 분연히 반대하고 나서다

잇따른 ‘특종 사고’로 군정의 탄압이 가중되다

공약을 저버린 박정희, 리영희의 계속되는 ‘특종 사고’

13평짜리 ‘진보의 성지’를 마련하다


제6장 잇따른 필화와 강제해직의 수난

《조선일보》 외신부장으로 이직, 첫 필화와 회사에서 활극

베트남 취재 거부로 사직을 강요당하다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알리고 참상을 고발하다

외판원으로 생계를 꾸리다가 합통통신에 복직하다

본격적인 논문 발표, ‘64인 지식인 선언’으로 다시 해직당하다

줄담배와 배갈 그리고 치열한 글쓰기

중국 근대화 100년사 탐구 그리고 ‘조건반사의 토끼’

‘전환시대의 논리’로 사상의 단비를 뿌리다


제7장 행동의 길로 나선 사상의 은사

대학교수가 되어서 더욱 치열해지다

반이성에 대항하는 글쓰기와 더불어 사회운동에 앞장서다

중국문제연구소 설립으로 지식에 날개를 달다

냉철한 ‘이성’으로 ‘우상’의 심장을 쏘다


제8장 우상들과 투쟁, 감옥에서 한철

D검사와 리 교수의 ‘웃기는’ 논쟁 3막

‘정찰제’ 재판과 상고이유서 감옥에서 보낸 ‘불효’의 나날

‘투사’가 되어가는 아내 감옥에서 들은 ‘우상’의 사망소식


제9장 피로 물든 서울의 봄 그리고 외로운 호랑이와 그 벗들

피로 물든 ‘서울의 봄’ 그리고 조작된 ‘내란음모죄’

루쉰의 글을 통해 5공체제를 비판하다

일제 말기의 친일군상과 일본 교과서 왜곡의 본질을 말하다

한 시대를 지탱하고 지켜낸 ‘양심’들과 교감하다

자서전 집필 중 끌려가 ‘북괴 찬양선동죄’로 구속되다


제10장 뒤늦은 복직 그리고 숱한 간난 끝에 얻은 자유의 날개

‘미문화원 방화사건’ 증인으로 법정에 서다

뒤늦은 복직 그리고 친일부역자 비판

23년 만에 얻은 ‘자유의 날개’로 일본에 가다

독일 연구소 초청으로 아내와 유럽 여행을 떠나다

한국이 베트남에 사과부터 해야 하는 이유


제11장 6월 항쟁과《한겨레》그리고 방북취재기획

우파의 ‘부패’와 좌파의 ‘분열’에 일침을 놓다

버클리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자서전을 정리하다

국민이 만든《한겨레》창간으로 새로운 활력을 얻다

주한 미국대사에 반론을 제기하고 세기의 논쟁을 제안하다

‘남북한 전쟁능력 비교연구’로 또 하나의 우상을 깨다

방북취재단 ‘사건’으로 정권의 탄압을 받다

곡필 언론인과 기회주의 지식인을 질타하다

파란곡절의 60년 화갑을 맞아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다


제12장 동구권의 변혁과 현실사회주의 패배 선언

세계변혁의 길목에서 ‘역정’을 돌아보며 자신을 성찰하다

‘자유인’의 표상, 북한 학자와 심포지엄에서 만나다

‘문민정부’에 좌절, 그래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제13장 꺼지지 않는 이성의 불꽃

결혼 40년 만의 작은 행복, 온수 나오는 집과 유럽여행

리영희가 여전히 비종교인일 수밖에 없는 까닭

‘퇴장선언’에도 불구하고 펜을 내려놓을 수 없는 까닭

‘못다 이룬 귀향’의 슬픔, ‘준법서약’의 굴레를 벗긴 기쁨


제14장 다시 누가 있어 그의 이성을 이을 것인가

반세기의 ‘신화’와 싸워온 ‘동굴 속의 독백’

병상에 누워, 다시 거꾸로 도는 역사의 시계를 보는 슬픔

자서전 출간, 그리고 절필선언에 따른 ‘리영희 생제문’

노령에 터진 상복賞福도 ‘시대의 상심’에 위로가 되지 못했다


제15장 리영희, 마지막 인터뷰


닫는 글_ ‘1인분의 역할’의 의미를 되새기며

편집후기

연보

각주

찾아보기

 

<책의 내용 맛보기>

  

40-41쪽  맹자는 하늘이 큰 뜻을 수행하려는 사람에게는 늑골을 괴롭힌다 하고, 하늘은 큰 역할이 끝나지 않는 사람은 불러가지 않는다 하였다. 리영희가 일흔 나이에 중풍을 맞고 쓰러졌다가 다시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터이다.

자신의 저서를 사들고 온 후학들에게 사인이라도 해줄라치면 리영희의 떨리는 손이 힘겨워 보인다. 해방공간에서 리영희가 무척 존경했던 백범 김구의 휘호체를 일러 ‘떨림체’라고들 한다. 백범은 1938년 3월 7일 저녁, 후난성湖南省 창사長沙에서 3당 대표들을 조선혁명당 본부 남목청南木廳에 불러 통합논의를 하던 중 괴한의 총탄을 심장 근처에 맞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후 수전증이 심해진 탓에 백범체는 ‘떨림체’가 되었는데, 자칭 ‘총알체’라고 농을 하기도 하였다. 리영희의 ‘떨림체’ 역시 그런 의미에서 값지다 하겠다.

리영희의 ‘병세’는 놀라울 정도로 호전되어 그 사이 임헌영과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담은《대화》를 구술을 통해 펴내었다.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 정부에서 제도민주주의가 착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인권신장과 남북화해협력의 틀이 제법 잡혀가자 리영희는 “내가 했던 주장이 이제 상식이 되었으니, 내 글의 소임은 다한 것 같다”며 벅찬 은퇴의 변을 토로했다.

그러나 건강을 차츰 회복한 리영희에게 이명박 정부의 통치 행태는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역사의 퇴행과 권력의 만행을 지켜보다 못한 리영희는 글 대신 말로 추상같은 질타를 던졌다. 2009년 7월 1일 저녁,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인권실천시민연대(인권연대) 창립 10주년 기념행사에서 행한 강연에서 이명박 정권을 파시즘으로 규정하였다. - 알라딘

 


66쪽 리영희는 어머니 뱃속에서 ‘목격’한 무지렁이 머슴의 독립군으로의 변신과, 외삼촌의 선진개혁적인 사상과 실천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고, 이것은 저항과 비판 정신의 씨앗이 되었다. “나의 생애에서 내가 의식하지 못한 ‘의식의 역사’가 됐다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 자신의 내부에 외가의 불행에 거슬러 올라가는 일종의 정신적 ‘내면의 원시시대’에서 ‘무의식의 근거’가 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이와 같은 정신적 ‘각성’을 겪으면서 리영희는 일 년의 “절반이 겨울이고 밤이 긴” 압록강에 가까운 고향에서 소년기를 보낸다. 긴 겨울이 되면 어른들은 꿩고기 다진 국물에 냉면을 말아먹고, 아이들은 썰매를 타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일제가 민주를 침략하기 전까진 시골 벽촌에는 그런대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었다.

소년 리영희는 “웃으면 양 볼에 보조개가 살짝 파이는 예쁜 아이”로, 한 반이던 국수집 딸 김명수와 그네를 타면서 “인생에 남은 첫 연정”을 느꼈다. 해방 뒤 서울 남대문·동대문시장의 포목시장을 지배하고 앉아 있는 평안도 출신 여성들 속을 가끔 헤매었지만, 첫 연정의 여인 명수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기에 처음으로 만난 이 소녀는 리영희의 가슴속에서만 남게 되었다. - 알라딘

 


443쪽  “지난 한 세월 동안 내게는, 이 사회에 ‘신문지’는 있어도 ‘신문’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넋두리를 인쇄한 ‘…지紙(종이)’는 내게 조석으로 배달되어왔지만 ‘새 소식(신문)’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소식이라는 것도 하나같이 권력을 두둔하는 낡은 것이고, 권력에 아부하는 구린내 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기에 그따위 ‘신문종이’를 만들어내는 신문인들이 감히 ‘언론인言論人’을 참칭할 때 나는 그들을 ‘언롱인言弄人’이라는 호칭으로 경멸해왔다.” - 알라딘

 

 

리영희(李泳禧, 1929년 12월 2일 ~ 2010년 12월 5일)은 대한민국의 진보적 언론인, 언론학자, 사회민주주의적인 사회운동가이다.


1950년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 안동에서 영어교사로 근무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1950년 대한민국 국군 육군 장교로 자원입대 한 뒤 7년간 복무했다.

 

제대 후에는 언론인으로 활동한다. 1957년부터 1964년까지 합동통신 외신부 기자, 1964년부터 1971년까지 조선일보와 합동통신 외신부장을 각각 연임했다.


196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신문대학원을 연수, 1972년부터 한양대 문리대학교 교수 겸 중국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한양대 문리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박정희 정권에 의해 1976년 해직되어 1980년 3월 복직됐으나, 그해 여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다시 해직됐다가 1984년에 복직. 군사정권 기간동안 4번 해직·5차례 구속 당했다. 1987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정식 부교수로 초빙되어 '평화와 갈등' 특별강좌를 강의하였고, 1995년 한양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간경화로 투병, 2010년 12월 5일에 사망했다.

 

저자 : 김삼웅  

 

소개 :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자 언론인이다.《민주전선》등 진보매체에서 활동했으며,《대한매일》(서울신문) 주필로 있으면서 동호지필董狐之筆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

 

제7대 독립기념관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친일인명사전》편찬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친일정치 100년사》《곡필로 본 해방 50년》《한국필화사》《위서》《금서》《한국현대사 바로잡기》《을사늑약 1905년, 그 끝나지 않는 백년》《통일론수난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나》《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단재 신채호 평전》《백범 김구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녹두 전봉준 평전》《안중근 평전》《약산 김원봉 평전》《장준하 평전》《죽산 조봉암 평전》《만해 한용운 평전》《김대중 평전》《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리영희 평전》 등이 있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책...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한길사 刊

리영희 저작집 제8권 <새는 '좌ㆍ우'의 날개로 난다>. 좌ㆍ우의 어떤 정치ㆍ이데올로기적 권력이 진실을 은폐, 날조, 왜곡하려는 것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대로 세상을 밝혀내는 것을 목적으로 쓴 글들을 담은 책이다.


행동하는 지식인 리영희의 저작들을 한자리에 정리한『리영희저작집』은 기존의 저작 11권과 새로운 저작 1권을 포함한 창작 저서로만 구성되어 있다. 특히 새 저작인 제12권은 단편적으로 발표되었거나 공개되지 않은 채 있던 원고들을 모으고 정리한 것으로, 화해와 평화의 염원이 약동하는 21세기 인류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씌어진 글들이다.


이 저작집에는 리영희의 대표작이자 판금도서로 지목되기도 했던 문제작을 비롯해, 개인적 삶의 회고록 등 1957년 신문기자로서 첫발을 뗀 후 언론인, 대학교수, 현장비평가로서 활동하면서 펜의 힘으로 일군 그의 50년 집필인생이 모두 담겨 있다. 국제정세 분석, 언론비평과 사회비평글, 심도 있는 대담과 에세이, 편지, 회고 등 다양한 글들이 수록되어 있어 리영희 사상의 면면을 폭넓게 살펴볼 수 있다.


목차


어떤 서사(序辭)·고은│6

머리말│15

연보│593

찾아보기│599

 

1

북한 핵문제의 바른 인식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23

한반도 핵 위험의 구조│26

미국­북한 핵문제의 P.T.S.D적 특성│58

한반도의 비핵화·군축 그리고 통일│81

전쟁을 부추기는 자들이 있다│100

 


2

바람직한 통일의 논리

흡수통일론은 위험한 발상│107

현 상태로 통일되면 불행한 사태 초래│111

민주적 문민정부만이 통일과업의 담당자가 될 수 있다│117

북한의 이질화만큼 남한의 이질화도 걱정하자│123


<본문 중에서>

권력에 빌붙었던 지식인들의 재빠른 변신을 보면서 (1993.9)


정치바람이 바뀐 요사이 글과 말의 기회를 차지한 교수들은 대개가 '타협·화합·관용·용서'로 시작해서 '아량과 이해'를 촉구하고 "과거는 과거에 묻어버리자"는 '망각의 미덕'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 같다. "과거사의 판단은 역사에 맡기자"는 고매한 설교들이다.


'타협과 화해...'로 시작해서 '역사의 무덤'의 철학으로 끝나는 주장에 별로 반대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철학이 "지난 일은 잊어버리자"나 "보복은 안 된다"는 따위의 주장은, 적어도 지난 30여 년 동안 포악하고 부패타락한 군인정권 경력이 있는 교수들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주장이다.

(...) 정치의 풍향이 조금 바뀌는 성싶자, 바로 그런 부류의 교수·지식인들의 입에서 "보복하지 말자!" "과거는 역사에 맡겨라!"라는 합창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한 지휘자의 지휘봉에 일사불란 따르는 악사들처럼, 아직 '문민정부'나 '민주주의'는 겨우 그 첫발을 디뎠을 뿐인데, 그들은 마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나 한 듯 다시 정세를 호도하고 있다. 풍향계의 바늘보다도 더 빠른 변신! - 본문 405~407쪽에서


나는 좌우의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적 권력이건 진실을 은폐하고 날조하려는 흉계에 대항해서 진실을 찾아내고, 그것을 바른 모습대로 세상에 밝혀내는 것을 글 쓰는 목적으로 삼고 일관했다. 진실은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이 책은 인식능력과 지식, 사상과 판단력에서 좌우의 균형이 잡힌 이상적인 인간과 사회를 목표로 삼고 염원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 리영희 선생의 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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