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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스크랩] 치와와 4형제

by 호호^.^아줌마 2011. 5. 3.

 

* 누구 보시라고 다시 띄웁니다. 또 봐도 귀엽죠? 지금 키우는 뇬은 성격이 예쁜 바로 아래 '꿈'이 입니다.

 

 

 

'꿈'이... (흔한 노랑견이지만 인물로 치면 네 형제 중 꿈이 으뜸이다)

 

 

마당에 묶여있는 진돗개 찰수(察守)는 아주 오래 전 내 초딩 때 지어논 이름이다.

초등학교 시절 부터 대대로 우리 집에 팔려온 모든 개에 붙여진 내 애견의 대명사인 셈인데

시중에 굴러다니는 살필 찰(察) 자에 내 아까운 이름 끝 자, 지킬 수(守)를 하사하여

"집을 잘 지키라!" 전국에 교지를 내렸던 것.

내가 초딩 때 교과서에 드문드문 한자를 배운 세대이긴 하지만 실은

내가 멋진 개이름에 대한 한자적 '쏘스'를 내이자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察' 자이다.

 

 

 

 

 

그런데 세월 따라 어느덧 내가 바뀌고 개도 차차 바뀌어간다.  

 

함부로 무단가택침입하는 삵, 쥐, 도둑고양이, 두더지, 뱀,

구렁이, 심지어 나방과 말벌에 이르기까지 방어하는

'집지키미'의 중책을 집착적으로 수행했던 찰수를 보면서

동안 꽤 많이 흐뭇해 했던 기억들을 뒤로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예의 그 사냥꾼의 본성이 저질렀던 몇몇 과오를 생각하면 지금도 내 눈에서 불티가 난다.

 

닭띠 아내의 선물로 챙긴 철통 같은 닭장의 닭을 두차례에 걸쳐 28마리나 죽였고,

담장위에 웅크린 옆집 할머니의 고양이를 도움닫기로 뛰어올라 죽였으며,

내 화단을 만신창이로 할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5년을 절대 개집으로 들어가지 않는

저 무시무시하고 미련곰탱이 같은 야생성으로 내 간을 또 얼마나 태웠던가!

 

 

 

 

지금도 현관문을 나서면 바라보기 안쓰럽고 기분이 언짢다.

누렇게 15년을 늙고 털이 엉성하며 냄새나고 시끄럽다.

새로 들인 '마루'에 대한 처절한 시샘의 울부짖음은 시도 때도 없지만 특히

주인님이 밖에서 들어오시거나 현관문을 나설 때, 그리고 밥을 줄 때마다 이어진다.

 

서로 사이좋게 살아준다면 어이 이 잘 생긴 주인님께옵서

'구르는 돌'을 놔멕이고 '박인돌'을 묶겠는가 말이지!

 

 

 

 

그러고보니 내 인생의 15년 전만 해도 나이가 퍽 진돗개다왔다.

 몸집은 작아도 강했고, 철저했으며, 피아를 알고,

밥그릇과 집 모서리를 잘 지켰으며 가시덤불을 마다하지 않았고 겉도 안도 제법 잘 익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늙어 안팎도 잘 모르고 입과 눈꼬리가 주름지고

또 아무데나 둥글며 까닭없이 조촐하고 아싸리 한가해졌다.

그러니 요샌 정서적으로나 성격적으로 '마루' 에 더 가까운 쪽임을 어쩌지 못한다.

 

 

 

 

이 녀석의 이름은 '달'.

('블랙탄'이라하여 종견으로 쓸만하며, 눈두덩의 흰점이 달송이 같아 이렇게 이름 붙였다)

 

내가 저 쥐새끼만한 애완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동안 이 '집지키미'와 같은 역할론의 부재가 지배적이었던 것.

 

그나저나 '마루'는 뭐 가져갈 것도 없는 우리 집을 알맞게 잘 지키며

주인님의 마음을 읽는 눈과 발에, 무엇보다 성격이 둥글고 원만하여

'찰수'가 먼저 덤비지 않는 한 결코 싸움을 거는 일이 없고,

젊고 우아한 털과 몸집을 가졌다.

 

 

 

 

요눔은 '별'이.

(눈 가의 점이 흐려서 달보다 덜 밝으므로 '별'이 되었음. 요크샤테리어처럼 털이 많은 편임.)

 

 

이 주인님이 갈수록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한집에서 서로 할퀴고 싸우는 짓인데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부부, 형제, 벗들이

서로 싸우면 결국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잘 깨닫고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같은 도를 개에게 바라다니! 

밥 때마다 싸움을 거는 '박인 돌 찰수'는 뒷마당에 묶고

그래서 밥 때마다 눈치를 살펴야 하는 '굴러온 돌 마루'는 앞마당에 풀어놓았던 것.

 

 

 

 

사람은 바뀌어야 산다.

사람이 바뀌어야 인간답게 산다.

바뀌지 않는 것을 흔히 '변함없다' 하여 조석으로 변하는 인간의 마음을 아쉬워하지만

착함, 진실함, 따뜻함 같은 근본은 두고 시간과 환경과 관계에 넉넉히

사람은 변하고 또 변해야한다.

저 우주의 유현성을 생각하라. 촌각도 머무는 법이 없질 않은가.

 

 

 

 

 

찰수 한마리만 키우면 괜찮았을텐데 원죄는 주인님에게 더 있지 않냐구요?

마자마자...^^ 내 그토록 '마루'를 안 갖겠다고 앙탈을 부렸지만

아파트에서 내보내야하는 마루 주인장의 간절한 원과

TV 속 '상근이' 같은 이놈을 꼭 보듬고 오겠다는 우리집 애들 사이에서

내가 어쩌지 못하고 만 것이 오늘날 이같은 괴로움으로 불어난 것이다.

 

들이 보이고 작은 마당에 풀포기가 돋아나는 전원주택에서

개도 스스로 변해야 산다.

으르렁거리는 질투, 시샘, 욕심, 집착, 성냄 따위로는 도무지 묶일 수밖에 없다.

 

 

 

 

 

내가 이 두 놈의 사이를 위해 찰수를 개 조련소에 보낸다거나

살던 '마루'를 다시 오데로 정처없이 내보내거나,

찰수새끼를 걍 홧김에 내다 팔아버리거나 하는 어떠한 조치도

불가능해진 마당에 차라리 내 들꽃화단이야 짓뭉개지든 말았든,

피투성이 두 다리를 절룩거리고 입술이 너덜너덜 찢어지든 말았든간에

 내 몰라라 확 풀어줘버릴까?

 

 

 

 

 

산 개 한마리 키우기가 이토록  가슴에 부스럼딱지다.

내 이를 왕년에 다 알고도 이적 속을 못 차려 어젯밤엔 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오데서 48일 짜리 두더지만한 치와와 새끼 넷을 술이 취해 밤길로 돌아왔다.

 

 

 

 

 

이 평화롭게 잠든 흰 녀석이 '해'이다.

(몸이 희고 수컷이니 '해'다. 종견으로 손색이 없다. 종견짜리는 보통 교배비가 20만원이란다.^^)

 

말하자면 애견샵 가 도합 백만원이 넘는 것을 얻었지만

딴은 키우기 좋은 '전원 탁아소'로 내맡겨진 셈이기도 했다.

 

 

해와 달

 

 

한 배에도 아롱이 다롱이라더니

갈색 어미 배에서 한나 나올 때마다 주인님의 볼이 일그러지며 미소도 터졌으리라...

오, 몇 대 째 이 종자들이 숨죽이며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흠...

 

 

 

 

"찰수는 가고, 마루는 또 새로 이사갈 화순의 낮은 산마루를 지킬 것이다."

생각하니 마음이 고만고만해진다.

 

아, 개를 사랑하다 어린 나이에 견딜 수 없는 이별을 겪은 후

나는 이게 또 얼마만이더냐!

 

 

 

 

내가 중 3때 애틋이 기르던 '찰수'는 영리하고 용맹하여 잊을 수 없다.

새끼를 낳고 냉병으로 죽어가는 서러운 이야기를 당시 학원사에서 발간하던 잡지

<중 3 생활>에 눈물로 기고하여 마음을 달랬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 산문의 제목은 <나의 찰수>였다.

내가 그 때 알고 문학에 들었더라면 화가보단 나았으리란 생각에 지금 들뜬다.^^

 

 

 

 

그날 이후 난 개를 소 닭 보듯 외면하였던 세월이 있다.

전원주택을 짓고 개를 얻을 때에도 나는 조금도 반가운 기색을 내지 않았고

다 자라도록 자주 머리를 쓸어주거나 입술을 한번 맞춘다거나 보듬어주는 일 또한 하지 않았다.

의무로 빗질 몇 번, 목욕 몇 번, 피부병 났을 때 치료 몇 번이 고작

나와 한 마당을 공유하고 사는 이 '집지키미'에 대한 배려의 전부였다.

정도 너무 들면 멍 된다.

 

강화에 사는 막내 여동생은 마당에 병아리를  40마리나 키우는데

닭의 이름을 다 지어주고 그 어미와 할미와 할배와 아비와 손주와 입양아까지 들여다보는데

지금도 아들과 함께 닭고기란 걸 모른다.

 

 

패싸움

 

어릴 적 동생이 학교 앞에서 사온 수평아리가 늠름한 수탉이 되도록

책가방을 내던지고 들여다보던 것을 어느 날

할머니가 팍 잡아버리는 바람에 눈물로 지새더니

그 후 오늘날까지 동생은 닭고기에 대한 모든 혀를 잃어버렸다.

 

애가 아무렇지도 않는데 일체 말은 하지 않고 표정만으로 대화하는 아이가

우리 백수중에도 두 가시내가 있다. 차제에 다 비슷비슷한 부류(종자)들 아닐까...

 

 

마루 ('상근이' 종자 - 그레이트 피레니즈 - 의 큰 털보인데 성격이 둥글어 몽니 고약한 늙은 찰수에게도 너그러움)

 

 

마루는 걱정이 하나 생겼다. 어젯밤부터 거실 안에서 깔깔거리며, 요요거리며,

해야, 달아, 별아, 꿈아 부르는 강아지 소리에 벌떡벌떡 거실 창에 매달린다.

발로 창문을 열고 쳐들어올 기세다. 아파트에서 쫓겨난 놈이 전원주택

거실을 넘보는 한 '변화하지 않는 사람'처럼 네 운명도 결코 평탄치는 않으리라

주문처럼 커튼을 닫는다.

 

찰수야, 미안타. 너를 소재로 말이 많았다만 정작 네 사진을 싣지는 못한다.

차마 들꽃연구회 회원님들의 격조 높은 눈과 미모의 찌뿌린 이맛살을 생각하니...

 

"개가 털이 빠지고 몰골이 해지더라도 마음을 곱게 써야하느니라. 고운 마음에서는

멋진 생각이 나오고, 멋진 생각에서는 아름다운 행동이 절로 터져 나오는 거란다..."

그것이 모든 산 것들의 책임이고 목적이니 찰수야 자중하고,

마루야, 너는 명심하여 부디 행복하여라...

 

 

 

출처 : 전남들꽃연구회
글쓴이 : 김진수 원글보기
메모 :

 

개는 주인이 키우기 나름이다.

오늘 얻은 교훈입니다.

지난 한달 보름 동안 강아지 두 마리 때문에 딸들과 옥신각신했던거 반성합니다.

또 오늘 아침에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거실 카페트 물어뜯었다고
 파니녀석 뺨 때린 거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한번 제대로 키워볼 생각입니다.

파니, 동원이

그리고 강이, 산이

느그 각오해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