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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용천사 꽃무릇은 아직도...

by 호호^.^아줌마 2011. 9. 15.

 

지인의 초대로 함평군 해보면에 있는 잠월미술관을 다녀오는 길에 들른 용천사.

가을이면 꽃무릇 천지가 일품이라는 얘기가 생각나 찾아가봤습니다만, 아직 이르더군요.

꽃무릇은 일주일쯤 뒤에나 활짝 필 것 같습니다.

미리 고개를 내민 몇 녀석이 있어서 위안을 삼고 왔습니다.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 꽃무릇 군락지는 국내 3대 꽃무릇 군락지 중 하나로 매년 9월 중ㆍ하순경이면 붉은 꽃무릇이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60여 만평에 달하는 한국최대의 꽃무릇(상사화)이 군락을 이루며 자연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2000년 제1회 꽃무릇축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일년에 수십 만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올해는 9월 17일부터 이틀 동안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용천사 인근 꽃무릇 공원에서 열린다. 해보면꽃무릇큰잔치추진위원회의 주관으로 드넓은 꽃 무릇 군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번 꽃 무릇 큰잔치에서는 기념행사를 비롯해 면민위안행사와 체험행사, 전시ㆍ판매행사 등이 다채롭게 선보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  천년고찰 용천사는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모악산에 위치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삼국시대, 백제 침류왕 1년(서기384년), 인도에서 건너온 마라난타(摩羅難陀)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또한 일본에서 발견된 사료(史料)에 의하면 백제의 제 22대 문주왕(文周王)때(서기475~477년), 행은선사(幸恩禪師)에 의해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통일신라시대, 원성왕(元聖王)1년(서기785년), 중국 선종(禪宗)의 중흥조인 육조 혜능대사(六組 慧能大師)의 제자인 청원 행사존자(靑原 行思尊者 ?~740년)에 의해 서남해의 대찰로 발전해 왔으며(문헌:조선 숙종 31년(1705년),용천사대웅전단청기), 고려 말 각진국사(覺眞國師,서기 1270~1355년)에 의해 불갑사(佛甲寺)와 함께 크게 융성하였다.


조선시대, 인조 10년(서기1632년), 대웅전을 중창하였고 인조 16년(1638년),쌍연선사(雙衍禪師), 개연선사(槪然禪師)가 그 외 부속건물을 짓고 단청을 마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숙종 31년(서기1705년), 보수와 중창을 거치면서 전각과 부속건물이 30여 동에 이르는 거찰(巨刹)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정유재란과 근대 6.25전쟁으로 인하여 사찰의 모든 건물이 불타 소실됐으며, 석조물(석등:전라남도 유형문화재 84호, 석탑, 돌계단, 부도밭, 석축, 해시계, 주춧돌)들이 남아 지난날의 웅장했던 사찰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다행이 90년대 이후, 지역주민의 애정과 관심으로 인해 대웅전, 지장전, 요사채, 사천왕문, 해우소, 황토방 등 천년고찰인 용천사 복원불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용천사 꽃무릇

 

상 사 화

              -이해인-

아직 한 번도
당신을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를
기다려 보지 못한
이들은 모릅니다.

좋아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안타까움
어긋나 보지 않은 이들은 모릅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
언제까지 홀로여야 할까요.

오랜 세월 침묵 속에서
나는 당신께 일하는 법을 배웠고
어둠 속에서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익혀왔습니다.

죽어서라도
당신을 만나야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

 

 

 


 Jussi Bjorling, Tenor

비제 진주조개잡이 中 '아직도 귀에 남아있는 그대의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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