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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시인

시인의 하루...김황흠

by 호호^.^아줌마 2011. 9. 30.

◇나주 산포 정자교의 구름과 하늘

 

 

새벽녘 동트기엔 아직 이른 새벽 세 시에 일어납니다.

 

부산을 떨 듯 보낸 하루가 까마득한 저 편의 세계로 사라져버리고,

다른 한 세계가 기웃거리며 하루라는 또 다른 세계를 놓아둡니다.

 

밖은 어느새 썰렁해져 싸늘한 바람이 시누대 이파리를 건드려 대고

날카로운 이파리 끝으로 찬 빗방울을 흘립니다.

 

어느새 한 해의 대부분을 보내 버렸고,

지난 온 시간들은 기억나지 않을 만큼 멀찍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시간은 망각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이 하루를 기록하는 일에 충실했던가를 自問해보면
그 대부분은 허송세월의 망각이라는데 서 부정하지 못하고 맙니다.

 

지독하게 쓰지 못하는 시간이 참 많았습니다.

무슨 병에 걸린 것처럼 머릿속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탈색되기도 하고
누렇게 뜸떠서 사지가 오들오들 떨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은 죽고 싶을 만큼 견디기 힘든 것들임을 알면서 그대로 놓아 버리고

되든 말든 귀찮아했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의 무용론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지요.

 

현생에서의 존재는 자각을 통한 가치의 실현이라는 데서 꽤나 그럴듯한 사변적인

변을 달아 왔습니다. 지금도 그 가치에 부정하지 않지만 참다운 가치라는 것에
부정하지 않을 참입니다.

 

뒤란에 있던 감나무가 사라진 뒤로 새벽마다 찾아오던 부엉이, 올빼미 소리도 잃었습니다.

있던 것이 없어질 때 또 다른 것들도 사라지나 봅니다.
한 사람을 잃었을 때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인연을 상실한 것처럼 말입니다.

 

감나무가 사라지고 나니 감나무 이파리가 가을바람에 뚝뚝 떨어지는 소리도 사라졌습니다.

낙엽 청소하느라 성가시다는 어머니는 되레 홀가분한 표정이지만 어떤 때는 좀 서운한 생각도 들었지요.

 

가을은 누가 뭐래도 감수성의 계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계절은 누구나 다 시인이 되는 법입니다.

괜히 짜증도 부리고, 좀 슬픈 시를 읽으면 눈물을 찔끔거리는 시인들이 참 많은 나라입니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제 혼자서 뭉실 거리는 글의 시나위는 이 계절이 가장 적합하겠지요.

 

어느 날 잠시 일을 미루고 훌쩍 떠나볼까 하는 것도 이런 계절이 낳은 방랑의 본능이겠지요.

쓸모없는 지루한 잡설로 새벽은 참 성가십니다.

 

이 가을, 커피 한 잔 따뜻이 데워 봅니다.

 

- 블로그 친구 글쓰는 쟁기꾼 김황흠 시인의 페이스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