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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시인

길에 대한 단상...김황흠

by 호호^.^아줌마 2012. 3. 28.

 

 길에 대한 단상

                                                                             김황흠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제법 날을 세웠다.

지난 시간에 대한 미련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바람은

맵살스러울 만큼 오목가슴을 움츠려들게 한다.

마지막 몸부림이 여기저기를 들쑤신다.

동네 입구에 이르러 매화나무를 바라보았다.

며칠 빗방울 세례에 흠뻑 젖어 있다.

그간 나뭇가지에 한바탕 퍼질러 싼 새들의 흔적은

그 며칠의 빗방울에 씻겨 나무 수피가 깨끗하였다.

흔적을 지우는 것도 자연은 참 정갈한 힘으로 살살 씻겨낸 것이다.

나무 가지마다 벙긋벙긋 달아오른 꽃망울,

흰빛이 물기에 새치름하다.

길에서 마주친 하나의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들 듯

매화 꽃송이 하나하나마다 나름의 세상과의 만남에 설레리라.

한 계절은 늘 더디게 올 것 같아도

뚫어진 벽 틈 사이로 휙 달려가는 말을 본 것처럼

아찔하기만 한 게 시간이다.

주섬주섬 챙겨 입을 겨를도 없이 기다려주지 않은 것도

시간이다.

길은 그래서 외롭고 곤궁한 발소리에 더 고요하다.

꽃들에 대한 잠시간의 여유는 그나마 살아 움직이는

존재를 생각하게 한다.

부지런할수록 늘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한 요즘이다.

세찬 바람도 점점 기세를 누그러뜨린다.

바람도 어찌할 구 없는 미련은 흔적도 없이 아득히 명멸한다.

점 하나 꽂을 새 없는 허공의 한 귀퉁이가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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