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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나대용 장군 서거 400주년 이대로 끝내서야

by 호호^.^아줌마 2012. 5. 2.

 

◇ 거북선을 제작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호국영웅 나대용 장군 서거 400주기 추모제향과 동상 제막식이 지난 21일 소충사에서 거행됐다.

 

나대용 장군 서거 400주년 이대로 끝내서야

 

거북선 제작 주도 임진왜란 승리로 이끈 ‘민족영웅’

21일 추모학술대회 악천후로 무산, 시민적 관심 필요

 

나주가 배출한 조선시대 과학자이자 거북선 제작자인 체암 나대용 장군(1556~1612)이 올해로 서거 400주년을 맞았다. 과학의날인 지난 21일 장군의 탄생지인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오륜마을에서 추모제향과 동상제막식이 열렸다.

 

(사)체암 나대용 장군 기념사업회(이사장 나무석)가 주최하고 전라남도와 나주시가 지원한 이번 행사는 나대용 장군 사당인 소충사 일원에서 추모제향, 동상 제막식이 거행됐으며, 기념학술대회와 거북선 실험 현장 방죽골 답사는 악천후로 취소됐다.

 

이날 추모제향 행사에는 고성혁 부시장과 이기병 도의원, 임성환 시의원을 비롯, 금성나씨 대종중과 해군 나대용함 승조원, 해군 군악대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고성혁 부시장은 추모사를 통해 “거북선을 이용한 전술의 승리가 이순신 장군의 몫이라면 거북선을 제작한 과학전의 승리는 나대용 장군의 몫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영산강의 주역으로 바다를 지켜냈던 자랑스러운 선조의 정신을 이어 받아 앞으로 우리 나주가 새로운 영산강 르네상스 주역으로 도약할 것을 확신한다”고 힘주어 밝혔다.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나무석 이사장<왼쪽 사진>은 “1974년부터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소충사와 생가를 복원하고 동상제막 등의 사업을 해왔고, 앞으로도 생가마을인 오룡동을 한옥관광마을로 조성하고 과학관, 방죽골을 새로 만들어 조선기술 등 역사적 발자취를 전시하고 나아가 영산강에 거북선을 띄워 관광개발에 기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성나씨 대종중 나진 종친회장<왼쪽 사진>도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일본을 누르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나대용 장군의 선진업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제하며 “자라나는 우리의 2세들에게 나대용 장군의 과학정신과 발명정신을 계승시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고 세계를 이끌어 가는 시대를 준비하자”고 강조했다.

 

기념사업회는 이날 전남대 이성식 명예교수와 나대용함 김성규 부장소령, 한국학 호남진흥재단 서명원 상임부이사장 등이 참가한 가운데 나대용 장군의 활약과 기념사업의 방향에 대해 토론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악천후로 취소하고 차후 일정을 잡아 다시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나대용 장군을 임진왜란을 승리를 이끈 구국의 영웅으로 추모하기에는 이번 추모행사 자체가 짜임새 없고 엉성했다는 지적이다.

 

행사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전라남도와 나주시가 2천만원의 사업비를 지원해 이번 기념사업을 추진하는데 장군의 얼을 기리는 삼현육각 연주회와 문화공연 등을 곁들여 좀 더 많은 시민들의 관심 속에 추진됐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더구나 지역의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나대용 장군의 과학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해마다 학생들이 참가해왔으나 이날은 문중과 일부 관계자들만이 참석해 아쉬움을 남겼다.

 

참석자들은 주5일 수업제로 인해 학생들이 등교하지 않더라도 지역 교육지원청 차원에서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독려를 했어야 할 것이라고 교육당국의 무사안일함을 꼬집었다.

 

더구나 최근 새롭게 단장한 사당 주변에 주차장 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아 행사에 참가한 차량들이 좁은 진입로에서 뒤엉켜 북새통을 이뤘으며, 사당 바로 인접한 곳에 있는 대규모 축사에서 악취가 풍겨 참가자들의 코를 감싸 쥐게 했다.<오른쪽 사진>

 

참가자들은 호국인물을 선양하는 문화재 주변에 축사를 허가해 준 나주시의 근시안적인 행정에 대해 혀를 차기도 했다.

 

 

 

 

 

 

 

나주가 배출한 조선시대 과학자이자 거북선 제작자인

체암 나대용 장군(1556~1612)이 올해로 서거 400주년을 맞았다.

과학의날인 지난 21일 장군의 탄생지인

나주시 문평면 오룡리 오륜마을에서

추모제향과 동상제막식이 열렸다.

학술토론회도 열릴 예정이었으나

강풍을 동반한 폭우로 취소돼 아쉬움을 남겼다.

 

 

 

체암 나대용 장군은 누구?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배 만든 배달겨레의 조상

 

체암(遞菴) 나대용(羅大用 1556~1612)장군은 임진왜란 때 수군의 장군으로 거북선 제조와 쾌속선인 해추선 발명 등에 앞장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조선의 대표적인 과학자이자 발명가다.

 

1556년 나주 문평면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금성(錦城)이고 첨추(僉樞) 나항(羅亢)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래 문장이 뛰어나 문인이 되려고 했으나 1583년 선조16년 훈련원 별시에 병과 급제하여 훈련원봉사를 지냈다.

 

1591년 전라좌수사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병선 연구에 힘썼는데 특히 거북선을 건조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1592년 옥포해전에서 유군장 직을 맡아, 적의 대선 두 척을 격파하고, 사천해전에서는 분전 끝에 총탄을 맞아 부상을 입고, 한산도 해전에서도 부상을 당하였다.

 

명량해전과 1598년 노량해전에도 참가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이와 같은 공을 인정받아, 1594년 강진현감으로 제수되었고, 이어 금구, 능성, 고성의 현감을 역임하였다.

 

1606년 12월 24일 나대용은 선조에게 상소를 올려 창선을 개발하였다고 전한다. 전투형 거북선과 탑승인원을 많이 필요한 판옥선의 단점을 보완해 칼과 창을 빽빽이 꽂아 창선을 건조한다. 125명이 필요한 판옥선에 비해 격군 42명으로도 배의 운용이 가능하며, 군 인력을 늘이지 않고도 배를 두 배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유용한 장점이 있었다.

 

1610년 광해군 2년에는 남해현령에 제수되어 해추선이라는 쾌속선을 고안하여 건조하였고, 1611년에는 경기수군을 관할하는 교동수사에 제수되었으나 전쟁에서 입은 부상이 재발해 부임하지 못하고 1612년 1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다.

 

나대용 장군은 조선 최고의 선박기술자로 거북선을 개발하였는데, 탁월한 전공을 세웠으며 속도가 느린 판옥선을 개량해 해추선 등을 고안하였다. 또한 해전에서 기술적 우위를 가지게 한 핵심 기술자였다. 나대용에 대한 기록은 《충무전서》,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등에 전해져 내려온다.

 

1974년 10월 이은상을 회장으로 나대용장군기념사업회가 조직돼 체암 나대용 장군 실기가 편찬 되고, 1977년에는 나대용 생가와 묘소 등 호국유적지를 전남도지방문화재 26호로 지정됐다. 이듬해 11월 장군을 모시는 사당인 소충사를 건립해 과학의 날인 매년 4월 21일 추모제향을 거행해오고 있다.

 

1999년 6월에는 나대용 장군의 탁월한 과학적 조선기술과 구국정신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옥포 대우조선소에서 건조한 제8호 잠수함을 나내용함이라 이름 지었으며, 2007년 12월 사단법인 체암 나대용 장군 기념사업회를 발족해 기념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