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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의시인

새해를 여는 시 '홀아비 타령' 이명한

by 호호^.^아줌마 2013. 1. 7.

 

홀아비타령

                                                 이명한

 

도로와 철길이 교차하는 지점

검은 열차가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지나가자

해진 잠방이에

검은 점퍼를 걸친 농부 하나

가파른 골짜기를 더듬어

올라오고 있다

 

얼굴 위에 새겨진 나이테 위로

금성산을 넘어온 석양볕이

부시게 회전하고

등에 걸친 망태기의 무게가 힘겹다

 

멀리 서울에서

차를 몰고 있는 큰놈은

무사하기라도 한지

 

광주에서 옷장수를 하는

둘째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있을까

 

부산에서 배를 타고 있는 셋째 녀석은

지금쯤 먼 바다를 항해하며

석양의 갑판 위에서

짜잔한 이 아비를

생각이라도 하고 있는지

 

강릉으로 시갑간 딸은

동해의 거친 갯바람 쐬며

함지에 담긴 오징어를

세고 있을 거다

 

주렁주렁

팔다리에 매달려

따라붙었던 놈들은

파닥파닥 날개 치며

하나 둘 뒤를 이어 날아가 버리고

 

골목을 돌아

움막 같은 집을 찾아들면

불빛 없는 처마 밑에

먹빛 어둠이 배회하고 있다

 

창문 열고 달려 나와

맞이해줄 이 없는

텅 빈 마당에서

검둥이 한 마리

비명 아닌 환성을 지르며

앞발 들어 할퀴며 뛰어 오른다

 

 

소설가·시인 이명한

 

-1931년 나주 생

-월간문학 소설 신인상

-광주전남작가회의 공동의장

-광주민예총 회장

-6·15공동위원회 남측공동대표(현 광주전남 상임고문)

-소설집 ‘효녀무’ ‘황톳빛 추억’, 장편소설 ‘달뜨면 가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