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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김노금 세상보기-나라꽃 무궁화를 생각한다

by 호호^.^아줌마 2008. 8. 20.

나라꽃 무궁화를 생각한다


며칠 전 시골길을 가는데 도로가에 심겨진 배롱나무가 참 아름다웠다.

붉은 꽃이 만개하여 탐스럽게 피어 늘어져 가로변을 수놓는 여름꽃으로 길손에게 이런 기쁨을 줄 수도 있구나 하며 자못 흥겨운 기분도 잠시, 곧바로 무궁화가 무리지어 피어 있는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아! 무궁화.

그때의 기분을 무어라 표현해야 옳을까?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것을 부주의와 사려 깊지 못함으로 팽개쳐 버려두었다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만나게 되었을 때의 그 미안하고 부끄러운 심정...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기어이 그 뙤약볕에 차를 멈추고 무궁화 앞에 죄인 된 심정으로 서고야 말았다.

억압과 수난 속에 움츠려진 생채기처럼 나무의 등걸은 뒤틀려 옹이가 져 있었고 과연 진딧물도 새까맣게 나무 등걸에 붙어 있었다. 화려하고 미끈하고 풍성한 것만을 탐하는 우리의 무관심 속에 온전한 나이테조차 감을 수 없었던 피눈물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 무궁화는 그렇게 작렬하는 여름의 열기 속에 뒤틀리고 옹이진 몸뚱이로 서 있었다.

나라꽃으로 법률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무궁화는 이미 수천 년 동안 우리나라 전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어 겨레의 꽃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되어 왔다. 일제는 독립 운동가들이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내세우자, 방방곡곡 백성들과 함께하던 무궁화를 불태워 버리고 그곳에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심어갔다.

우리가 춘심에 겨워 만개한 벚꽃을 찾아 봄을 노래하던 그 곳이 어쩌면 그 이전에 우리 꽃 무궁화가 분홍빛으로 아름답던 그곳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미치자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다.

나라꽃이라 부르는 무궁화.

그 무궁화를 가꾸는데 우리는 일본 국화라는 벚꽃을 심고 가꾸는 노력의 반 만이라도 기울였던가를 생각해 본다. 갖은 노력과 기술과 연구로 온갖 수종의 꽃과 나무를 좀 더 튼실하고 아름답게 길러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과연 무궁화라는 나라꽃에 기울인 정성이 얼마였을까?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허기를 날래던 나라가 분단과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 13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을 하여 올해로 광복 63주년 건국 60돌을 맞이했다.

팔십 노파의 머리털 한 오라기, 어린 아기의 오줌 한 방울까지를 모아서 수출을 해야 했던 나라가 이제 반도체 첨단제품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만하면 온 국민이 함께 쓴 참으로 장한 성공스토리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의 민족혼과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그토록 파내고 불태웠음에도 그 은근과 끈기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무궁화 앞에서 문득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본다.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리의 현대사는 기적의 역사였다. 높은 교육열과 특유의 근면성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독립한 140여개국 중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나라로 세계사에 우뚝 솟아올랐다. 광복의 성대한 환갑잔치를 치루는 마당에 광복이냐 건국이냐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모습이 참 부질없어 보인다.

정치인들에게는 그게 그리도 중요한 것인지 모르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 하다하다 할 짓이 없으니 별 것을 가지고 난리를 치는 구나’ 로만 생각하고 있다.

폭등하는 물가와 심각한 경기침체 속에서 서민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진정 몰라서 그리들 하시는가? 제 키보다 큰 풀포기에 쌓여서 진딧물에 시달리며 작열하는 태양 속에 힘겹게 서 있는 무궁화를 다시 바라본다. 영락없는 지금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다.

그칠 줄 모르는 여야의 정치놀음과 자리다툼, 그리고 발목잡기, 반대를 위한 반대, 내가하면 로맨스고 상대가 하면 불륜인 코미디 같은 정치인들의 모습은 건국60주년, 광복 63년 동안 고난의 역사 속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대다수의 국민의 모습인 무궁화 옆에서 아름다운 꽃의 생장을 괴롭히는 잡초요, 진딧물 같은 모습으로만 다가오는 것이다.

붉은 배롱나무의 요염함과 화려함 곁에 외로이 선 몇 그루의 무궁화! 누구하나 눈길 주지 않고 무심히 지나치는 무궁화! 우리의 꽃 무궁화는 꽃 중의 꽃이라고, 삼천만의 꽃이라고 외쳐대던 그때의 마음으로 되돌아갔으면 싶다. 은근과 끈기로 고난과 억압 속에서도 피고지고, 피고지고 우리겨레와 함께했던 무궁화 꽃에 좀 더 애정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 년 열두 달 꽃 축제가 열리지 않던 달이 어디 있던가?

동백꽃, 유채꽃, 산수유, 매화, 진달래, 개나리, 벚꽃, 철쭉꽃, 장미꽃, 튤립, 해바라기, 코스모스 , 국화, 거기에

못난이 호박 축제까지 온갖 꽃과 나무로 축제를 벌이는 이 나라 대한민국...

겨레의 꽃 무궁화를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위에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로 노래하며 그렇게 피워보게 하고픈 소망이 진정 지나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