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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이야기

공지영 신작 '도가니'

by 호호^.^아줌마 2009. 7. 3.

 

분노의 도가니

미안함의 도가니

부끄러움의 도가니

우리 딸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 시대 어미들의 눈물의 도가니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 윤민자 지부장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교육문제, 학교 급식문제 등의 이슈로 방송을 몇 차례 같이 하기도 하고, 광주KBS 시청자위원을 하면서 방송에 종종 쓴소리를 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언젠가 광주시교육감 대담방송을 하면서 학부모 대표로 윤 지부장이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삭발을 한 상태였다.

 

방송국 몇몇 사람들은 "뭔 저런 사람을 섭외를 했냐?"고 군시렁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삭발이유를 듣고 난 눈물이 났다.

 

그녀는 광주 인화학교에서 교직원들에 의해 저질러졌던 청각장애 학생들의 성폭력사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삭발을 했던 것이다.

 

교장, 행정실장, 교장의 둘째아들, 그리고 학생들의 보육을 담당했던 교사들까지 그 어린 학생들에게 몹쓸 짓을 해놓고 명예훼손 운운하며 윤민자 씨를 고발했다던가? 

 

그런데 정작 그 가해자 가운데 일부는 피해학생들이 증언이 불명확하다 하여 버젓이 복직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그렇게 된 사건이었다.

 

 

 '도가니'는 작년에 공지영 작가가 <다음> 문학속 세상에 연재를 하던 것을 날마다 기다려가며 읽었는데 이제는 한 권의 책으로 선보인다.

 

골치 아픈 세상일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이 책만큼은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 아이들도 사회의 폭력 앞에 당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진저리쳐지는 곳인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런 아수라판에서도 한줄기 희망의 빛이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웅변하고 있다.

 

이 책을 읽노라면 나도, 당신도 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고 싶은 욕망이 들겠기 때문이다.

 

공지영 = 불편한 작가.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해 왔던 것도 같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그랬던 것 같고,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운동권 출신의 여대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단편이었던가 중편소설이 그랬던 것 같고, 책으로 읽지는 못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저 잘 생긴 배우가 우니까 나도 우는 것 뿐이란 변명을 했던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그랬다.

 

출처가 기억나지 않는데, "돈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안 쓴다."고 말했던 그녀의 인터뷰 기사 역시 불편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는데, 하나 더 추가다.

 

도가니. 솔직히 이 책은 분노의 도가니다.

질척거리는 늪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구제하기 힘든 인간군상들을 보며 "Oh! My God!"을 연발케 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야기는 무진시(霧津市)의 자애학원이라는 청각장애아를 위한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아내 친구의 빽!으로 그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가게 된 강인호가 접하게 된, 더러운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기간제다. "이 신삥 새끼구나. 가뜩이나 요새 골치 아픈 일도 많아 죽겠는데, 뭘 쳐다봐. 이 씹새야!"(p120)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행정실정과 그 행정실장의 쌍둥이 형이 교장으로 있는, 그 쌍둥이들의 아버지가 설립한 학교. "이렇게 안개가 내리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한들 외부에서는 전혀 알 길이 없"(p42)는, 그런 학교의 기간제 교사. 학생들이 내지르는 비명을 들을 수는 있지만, 대다수의 선생들이 못 들은 척 넘어가버리는 상황에서 그는 학생들의 처절한 비명을 듣게 된다. 

 

글쓴이가 쏟아붓는 신랄한 독설을 들으며 "오물 가득한 욕탕에 들어가 머리끝까지 푹 잠긴 기분"(p51)이었다. 책을 읽으며 화가 났다.  

 

나는 그들처럼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종교의 가면을 쓴 채  선량한 척 해 본 적도 없는데 왜 자꾸만 내가 가해자인 것 같이 느껴지는지... 교회 목사의 설교는 차라리 한편의 코미디였지만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라 쓴 웃음이 났고, 돈 앞에 무릎 꿇고 마는 가난한 사람들을 실컷 비난할 수 없는 나의 얄팍한 도덕성에 짜증이 났고,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진저리가 났고, 사회의 상층을 이루는 인간들의 보잘것 없는 도덕성에 분노가 치밀었다. 심지어는 무진의 그 안개에게까지도, 자신의 치부를 한사코 덮어버리는 듯한  무진의 그 안개에게까지 분노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분노는 공지영 때문이다. 글을 너무 잘 썼다.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일들에 행동하지 못하는 양심,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며 읽었다.  그런 나와 같은 사람들을 향한 연민이 느껴져 더욱 부끄러웠던 이야기 [도가니].  "무진은 자애의 도가니였다."(p148)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자애의 도가니 무진(霧津)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했던 책. 분노의, 연민의, 부끄러움의, 불편함의, 안쓰러움의, 민망함의 도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