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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달빛

by 호호^.^아줌마 2009. 10. 5.

 

달빛

 

 

추석을 코앞에 두고 내리는 비 때문이었을 겁니다. 정체 심한 귀향길의 자식들을 기대 반, 염려 반 초조히 기다리며 적어보던 정채봉님의 동화입니다.

 

‘그가 아이였을 때 달은 종종 그를 보았다. 마루 끝에 서서 길게 달빛 같은 오줌을 누던 그를. 간혹 어머니한테 들켜서 꾸중을 들었으나 그는 이렇게 핑계를 대곤 했다.

 

“달빛하고 누가 더 하얀지 보려구요.”

소년이 되자 그는 집이 가난하여 우유배달을 하였는데 그때 달하고 가장 정이 깊이 들었다. 그 중 어떤 날은 윗사람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기도 했었다. 그러면 달빛은 하얀 손수건처럼 그의 뺨 위로 내려서 그를 위로하곤 했다.

 

청년시절에도 그는 달빛과 친히 지냈다. 도서관을 달빛 속에서 찾아가기도 하고 달과 새벽달과 더불어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날 그는 달한테 주먹을 쥐어 보이며 다짐을 했다.

 “두고 봐라, 난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

 

그런데 그가 머리를 빗어 넘기고 넥타이를 매면서부터였다. 그는 점점 달한테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것은 실로 우연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의 옥상 위로 달이 지고 있었는데 어느 방의 창가에 그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속옷 바람의 여자가 있었다.

 “아하, 결혼을 한 게로군.”

 

달은 제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옛 친구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이후 십수 년 간 달은 그를 통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달이 도시의 골목을 비추고 있는데 그가 술에 젖어서 전신주에 기대 서 있었다. 그동안 그가 변한 것은 약간의 대머리와 약간의 배불뚝이라는 점이었다.’ 

 

일 년 중 가장 크고 맑다는 한가위 달, 그러니 추석의 주인공은 뭐니뭐니 해도 달입니다. 어린 시절 어두운 심부름 길을 기꺼이 동행해 주던 정겨운 길동무, 나 또한 그 달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비록 구름 사이라지만 올 추석엔 한가위 보름달을 볼 수 있을 거라 했지요. 사랑하는 가족끼리 둘러앉아 휘영청 밝은 달을 보는 즐거움!! 달 속에 있다는 계수나무, 방아 찧는 토끼, 그리고 달의 여인 항아, 이런 전설 속 얘기 뿐 아닙니다.

 

우주를 너무도 사랑하여 그 먼 곳에 자신의 주검을 쏘아 올릴 것을 명한 천체학자 슈메이커까지. 온갖 이야기가 줄줄 엮어 나오는 게 달밤입니다.

 

달을 보는 것, 그것은 달이라는 거울에 제 마음을 구석구석 비춰보며 흐려진 부분을 정갈히 닦는 일 아니던가요. 그런데 그걸 깨닫던 바로 그 순간, 하필 ‘봐라, 달이 점점 멀어진다’라던 소설 제목이 떠오른 까닭은 또 무엇인지요? 

 

잘 모시지 못한 불효를 탄식하던 부모님의 묘소에서, 파리한 안색의 병상에서, 그리고 결국 마지막 한 평 남짓한 그의 묘지에서의 해후로 이어지던 동화의, 후회로 얼룩진 나머지 대목은 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