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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칼럼 '새해의 세 사람'

by 호호^.^아줌마 2010. 1. 2.

 

새해의 세 사람


김현임 


가능한 생생한 느낌의 글을 쓰려고, 새해의 첫날이 되도록 초조히 기다리는 사이, 언제나 맘속으로 후원하는 후배에게 안부의 문자가 왔고, 먼 곳의 문단 대선배님께는 과찬 실은 덕담의 전화를 올해의 첫 선물로 받았다.

 

‘와아! 함박눈이다. 눈송이처럼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안부문자의 구절처럼 눈 내리는 이 밤, 마치 장정(長程)의 출발일 여명(黎明) 앞에 선 나그네의 설렘을 감출 수 없다. 어쨌든 맘속으로 단단히 벼르고 있던 세 사람의 소개로 새해맞이 소회를 다잡아보려 한다.  

 

사주풀이에 범(인,寅)은 천권(天權)이니 갑인년, 삼십 여 년 전이었던가. 생애 첫 연시(戀詩)를 받고 하늘을 휘어잡은 듯 들떴던 기억도 난다. 각설하고, 무려 이백 사십년 전의 호랑이해에 쓴 글을 우연히 만났다. 새해의 명칭과 같은 경인년이라는 게 우선 눈에 확 띄었다. 조선 후기의 문필가 심익운이 ‘물정에 어두운 화가’라는 제목으로 쓴 심사정의 묘지문이다.

 

좌초한 문필가 심익운이 나머지 두 사람을 만나게 한 셈인데 글쓴이를 먼저 얘기하자. 문재(文才) 뛰어난 자식들의 앞날을 막는 장애를 거두기 위해 단지(斷指)까지 서슴지 않던 그의 아버지의 의도마저 빗나가고, 형이 상운(翔雲)이니 익운(翼雲)과 마찬가지로 날개라는 뜻이 이름자 첫 머리에 들어간 것이 더 애석 했달까, 장원급제로 젊어 요직에 등용되나 가화(家禍)의 여파로 귀양지를 떠돌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게 안타까운 심익운의 이력이다.

 

설상가상 자신이 쓴 글에서조차 이름이 모조리 삭제 당하는 최악의 불운까지,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해 부친처럼 손가락을 자르는 기행도 저지른다. 하나 글 쓰는 이에게는 결국 자신의 글만이 큰 재록이라는 걸 깨우친다. 부러움 섞인 찬탄을 쏟을 만큼의 좋은 글로 후세인들의 추앙을 받고 영원히 건재 하는 신원(伸寃) 아닌 신원을 받았다는 큰 감명이다. 

 

두 번째는 심익운의 글 속 주인공인 민노인이다. 오랜 공부로 터득한 천기(天機), 그 재능을 발휘해 남을 위해 명당의 장지를 구해 주되 귀천을 따지지 않고 가진 재주를 다 발휘했다던가. 군색한 형편에 남이 복채를 주면 기뻐하였으나 약속을 어기고 주지 않아도 결코 화내는 법이 없었다는 대목도 그렇고, 자신의 마지막을 알고 평소 가까이 지내던 심익운을 향해 가벼이 떠나는 여행길의 인사인양 생의 송별을 하던 민노인의 담담한 일상은 긴 여운을 남긴다.

 

인품이 주는 감동으로 하자면 점입가경인 셈이다. 가난하여 염습할 물품조차 없어 친족인 심익운에게 장례를 치러줄 것을 부탁할 정도였다는 이조후기의 걸출한 화가 심사정. 육체적인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고 평생 물감만 입에 묻히고 살았다는 대목에서 죽비로 후려 맞은 듯 정신이 퍼뜩 들었다.

 

 ‘옛 사람의 그림 비결을 깊이 연구하여 눈으로 읽은 것을 마음으로 터득하였다. 그런 뒤에 비로소 그동안 그려왔던 것을 완전히 바꾸어 유원(悠遠)하고 소산(蕭散)한 형상을 그림으로써 낮은 수준을 씻고자 애썼다. 중년 이후에는 배운 것을 융합하고 소화시켜 천성으로 그렸는데 잘 그리는데 목표를 두지 않아도 잘 그려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우환이 있든지, 환락이 있든지 붓을 잡지 않은 날이 없었다.’

 

실재경관을 초월하여 내재된 자연의 본질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융합시켜 새롭게 이상화된 산수화를 묘출했다는 인터넷상의 심사정을 다시 찾아보며, 아니 우환과 환락을 가리지 않고 단 하루도 붓을 놓지 않았다는 옛사람의 행적에 새삼 옷깃을 여민다.

 

오고가는 시간의 찰나에 겸허히 무릎 꿇고 싶은 기도의 극점이 새해맞이라던가. 물질만능으로 가파르게 치닫는 요즘 세태의 아슬함에 어느 때보다도 가계의 엥겔계수가 높다는 진단이 외려 반가울 정도다. 우리가 시급히 회복해야할 그 무엇을 지녔던 세 사람. 극도로 가난했지만 끝까지 삶의 품격을 잃지 않은 세 사람의 선인(先人)에게서 겸손, 온유, 정진의 옥석을 정선(精選)해 말끔히 비운 새 날의 새 터전에 가지런히 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