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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가족 밥상의 힘

by 호호^.^아줌마 2010. 1. 9.

김현임 칼럼…가족 밥상의 힘


눈썹 쏙 뽑은 듯 진 감꽃, 몽글몽글 핀 감자꽃, 노란 토마토, 시샘하는 상추꽃, 저 건너 밤꽃..., 마지막으로 꽃인 양 피어난 지가 뭘 안다고 와글와글 꽃도 아닌 걸 피워낸 개구리. 이런 것들이 등장하는 시를 읽다가 딸애에게 전화를 하고 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끼니 때 건 아니 건 서로를 향해 맨 먼저 묻게 되는 안부는 밥이다. 반찬거리를 묻는 내게 냉큼 대답하는 딸의 ‘개구리 반찬’이 한동안 목에 걸린다.

 

군것질거리 없던 봄밤의 긴 허기 탓이었을까. 세수는커녕 주렁주렁 매달린 눈곱도 못 뗀 우리는 마당에 흩뿌려진 노오란 감꽃을 주워 먹고 퉤퉤 거렸다. 간장에 달달하게 볶은 알감자볶음도, 아직 푸른 기가 도는 토마토, 씁쓰레 한 유월상추도, 푹 삶은 밤도, 우리 딸의 농 삼은 대답 속 반찬메뉴인 개구리 반찬만 빼고는 하나 같이 유년시절의 좋은 먹거리였다.

 

닷 되들이 양은 주전자 가득 채우는 물심부름은 고역이었다. 대룽대룽 매달린 펌프질도 힘에 부쳤다. 게다가 평화예식장의 황소만한 세퍼트의 싯누런 이빨과 잔뜩 부라린 눈, 금방이라도 쇠사슬을 끊고 혼비백산하게 만들 것만 같은 녀석의 집요한 협박이라니!

 

이 시려울 만큼 찬물에 말아 매운 고추 찍어 잡수던 아버지의 점심식성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끼니때 마다 한창 놀이 중인 골목을 향해 울려 퍼지던 거역 못할 호명소리. 밥시간은 부모님의 엄격한 점호의 시간이요, 하루의 행실에 대한 점검의 시간이기도 했다.

 

때론 전날 밤 장난을 치다 깨트린 장롱유리가, 혹은 밤새워 읽은 만화책이 들통 나 눈물 섞인 간간한 밥을 억지로 삼켜야할 때도 있었다. 누가 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에 감히 수저를 들 수 있었을까.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얀 쌀밥 한 가운데 선명하던 계란 노른자와 붉은 육회가 얹힌 아버지의 밥주발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했다. 버릇없이 생선에 먼저 젓가락이 갔다는 이유로 호된 꾸중을 듣던 여동생, 당신의 귀염을 독차지하던 막내딸에게도 그 불문율은 예외가 없었다.

 

인생의 행불행과 상관없이 넘겨야하는 밥, 허술한 밥상 앞에서 울컥 치미는 설움이 한두 번이던가. 홀로 먹는 밥처럼 진한 쓸쓸함은 없다. 정계의 요직에 오른 가장의 출세로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행복하지 않다 투정했다. 가난했지만 식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함께하던 식사의 즐거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심부름이 백 번 천 번 계속 돼도 좋다. 젊고 아름답던 어머니와 매번 티격 대던 형제들과 코 끝 새카맣던 직공들과 힘든 남의집살이에도 마냥 씩씩하던 식모 언니들, 이 외에도 때때로 시장을 떠돌던 거렁뱅이라던가 몇 몇 군식구들 심심찮게 끼어들던. 화기충천하던 그 대가족의 식사시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궁동 50번지의 그 여름날을 재현하고픈 간절함에 휘말린다.

 

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가장 큰 위로는 꿈이라던가. 허기 끝 꿈결인양 떠오르는 아프리카 전통식당이다. 그곳에서는 토착어인 ‘풀풀데어’로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토속음식인 ‘푸푸’를 먹는단다.

 

풀풀데어도 재밌지만 푸푸는 먹는 과정에서 생겨난 의성어 아닐까 싶고. 어쨌든 음식을 들기 전 한 손님이 기도를 하면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조용히 그 기도를 따라 듣고 있다가 같이 ‘아멘’하는 일이 종종 있단다. 맞다. 함께하는 밥은 함께하는 기도려니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함께하는 가족 밥상의 힘은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