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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며느리에게 남긴 어느 시어머니의 편지

by 호호^.^아줌마 2010. 12. 15.

 

 

 

 

 

 

 

 

 

 

 

 

 

 

 

셋째자부 너 간지도 모르고 자고 일어나본께 가고 없다. 얼마나 서운하다.

나 목욕시켜주고 비싼 것을 사 갖고 왔냐! 눈물 나왔다.

배즙도 노안서 해 갖고 왔다. 니 갖고 가라.

내는 대체 며느리 간지도 모르고 나중에 한나 아빠 오면 배즙 갖다 먹어라.

내가 돈 좀 줄께 옷 하나 사 입어라, 나는 성오가 달다리(매달) 돈을 보내주니까 살고 있으니 옷 하나 사 입어라. 싼 것이라도 옷 하나 사 입어라.

 

비밀이다.


며느리에게 남기신 편지


청송 김성대


어머님께서 지난해 6월 10일 아흔다섯 해 일기를 마지막으로 소천하시기 2년 전에 집사람에게 위 편지와 함께 네 겹으로 접어서 몰래 4만 원을 쥐어 주셨던 걸 찬바람이 불고 추워지니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서 찬장 속에 꼭꼭 숨겨 놓은 것을 꺼내 보였다.

 

큰딸 이름이 한나다. 사무엘을 낳은 어머니처럼 믿음으로 살라며 당신이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무척 신앙심이 강해 나이 서른인데 시집갈 생각을 않는다.

 

가끔 집사람이 어머님을 모시고 목욕탕에 가 목욕을 해 드려서 깊이 잠이 드셨던 모양이다. 그래서 7남매가 모두 매달 모아 막내동생(현재 한전 부장)에게 주어 어머님께 통장으로, 혹은 집에 오면 드리곤 했다. 늘 집에 오면 맛있는 음식과 어머님께서 좋아하셨던 반찬을 준비하여 밥을 해 주시니 너무나 고마웠던 것이다. 5남2녀(7남매)와 다섯 며느리가 지극정성으로 교회를 다녀오시면 자식과 며느리 조카들까지 모두를 위해 하나하나 이름을 외우시며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하늘나라에서 천사가 내려와 어머님을 위로하시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겨울방학이 되어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우리는 이삿짐을 꾸려 어머님께서 손수 장만하신 나주시내 4대문 안에 있는 기와집으로 좋다고 하며 이사를 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자식들 교육을 위해 직접 돌아다니시며 시장 옆 조용한 주택을 시내에다 장만했다. 왜냐하면, 동네 분들이 시장에 오시면서 바느질할 옷감을 사서 쉽게 집을 찾아 가져오시도록 배려하신 것 같았다.

 

매우 어려웠던 가정형편을 삯바느질하시면서 모아 집을 사셨기 때문에 50년을 기거하신 집이시기에 애착도 갖고 정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아들네 집에 오시면 다 아파트에 살기에 아들 며느리들이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불편하셔서 일주일을 견디기 어려워 집으로 가시곤 하셨다. 며느리들이 서로서로 앞다투어 자주 어머님께 문안드렸다. 다행히 나는 나주에 직장(LG화학 나주공장 총무팀)도 있고 해서 자주 집에 어머님을 뵈려고 갔고 집사람도 자주 내려와 정성껏 수발을 잘해 정이 깊이 들었던 게다.

 

처가에는 아들이 없어 딸만 다섯이며, 내가 셋째 사위다. 장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또한 제가 광주에서 살고 있기에 모시게 되었다.

 

장인을 15년 동안 모시고 마지막 임종까지 우리 집에서 모시고 살았다. 지금도 기일을 지내고 있어 아들 노릇을 한다고 하지만 부족하겠지. 부인은 제 부모님께 잘해 드려 이웃 사람들이 딸이냐고 묻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많은 다섯 자부가 있기에 그날도 부인이 맛있는 음식과 목욕을 시켜 드려서 몰래 손에 4만 원을 편지와 함께 꼭 쥐여 주며 옷을 사 입으라고 하시며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 "비밀이다"라고 하신 어머님의 며느리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알 것 같습니다.

 

나는 언제나 살아가고 있는 동안 어머님의 은혜를 내 어머님께 늘 마음 씀씀이가 대단한 집사람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보통 두 자녀 혹은 한 자녀밖에 없는 가정에는 인생을 살면 희로애락과 다정다감 그리고 평생에 살면서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고부간의 갈등 때문에 살기 어려워하는 요즘의 세태는 편견이 먼저 앞을 서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찬장 그릇 속에 어머님께서 자신에게 편지와 주신 4만 원을 보물단지처럼 고이 간직하고 앞으로 며느리에게 시어머님의 자상함을 물려줄 거라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