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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풀뿌리 사회운동을 주목한다

by 호호^.^아줌마 2011. 1. 21.

풀뿌리 사회운동을 주목한다 


임현진(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육·해·공군 중 ‘공군’에 비유된다. 비록 시민사회의 풀뿌리는 약하지만 사회변혁의 와중에서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거점폭격을 잘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때로 정치과잉의 사회운동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끌어온 요긴한 자산임은 물론이다. 앞으로는 한국의 사회운동이 성숙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생활정치에 기반한 풀뿌리 키우기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의 사회운동이 풀뿌리에 기반하여 생활정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가 주목된다. 지방선거를 계기로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모색했던 여성운동, 일본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운동, 시민정치교육과 정치참여를 주장한 한국YMCA 운동,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지역주민운동 등이 그 보기다. 이러한 풀뿌리 사회운동이 우리의 생활정치를 활성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자신이 처한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공동체 문제를


비록 아래로부터의 시민참여를 적극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지방자치라는 새로운 정치기회구조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시민의식의 미숙, 정치교육의 부재, 정당정치의 취약 등으로 인해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다 일부 자치단체장들의 부정, 선심행정과 예산낭비, 토호들의 지방의회 진출 등으로 인하여 지역수준에서 시민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생활정치 주체로서 나서기 어려운 것을 인정해야 한다. 중앙의 보수적 정당구조가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뻗쳐 독식하는 문제도 그 결과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주부와 여성이 제도정치로 점차 진출하였고, 생활협동조합단체들이 아이들의 보육이나 급식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지역의 보육조례나 학교급식조례를 제정함으로써 지역의 공동체 강화라는 측면에서 생활정치가 활성화되는 기폭제를 마련하였다. 풀뿌리 사회운동이 생활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단절시키기보다는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반응하고 대안을 조직하여 공동체의 과제로 만들어 가는 매우 소중한 기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국사회는 급속히 확장된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의 물결아래 WTO 체제, FTA 체결, 초국적 기업의 곡물시장 지배가 확고해지면서 이른바 세계 식량생산소비 시스템에 완전히 노출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사회운동은 지역의 먹을거리 운동으로 운동의 수렴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시민단체, 생산자 및 소비자들도 먹을거리의 생산과 공급과 관련하여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며 교육, 건강, 소비, 생명, 환경, 지역자치, 식량주권 등의 문제들을 함께 논의하는 생활협동조합운동과 지역주민운동인데,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여성이면서 소비자인 전업주부, 농민, 교사, 노조원들이 지역의 자발적 소모임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나누고자 지속적인 토론과 학습을 통해 공통의 대안을 마련하는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자발적인 소모임이야말로 한국형 생활정치를 모범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며, 나아가 지역의 이슈를 전(全)지구적인 문제와 결합하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담론을 창출하는 풀뿌리 운동의 실체인 것이다.


주부, 농민, 교사 등이 지방과 중앙과 세계를 연결


지난날 민주화를 견인한 사회운동의 자리에서 주변에 머물었던 전업주부, 농민, 교사, 노조원 등은 높은 교육수준과 익숙한 정보화 기술을 토대로 풀뿌리 지역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건강과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후속세대의 미래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교육, 건강, 소비, 생명, 환경, 지역자치, 식량주권 부문을 상호 결합하는 일종의 풀뿌리 사회운동의 수렴을 가져오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근래 학교운영위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직접 민주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지역조례 선포 운동을 선도하고 있고, 그리고 지역의 먹을거리와 식량주권을 가장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농업, 여성, 환경, 정의를 풀뿌리 사회운동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정보화 시대를 맞아 이들은 풀뿌리 지역에 기반을 두면서 정보화 활용능력(인터넷 카페, 트위터, 블로그, 홈페이지 등)을 발휘하여 때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사람들 속으로 내려가 이들을 지역, 중앙, 그리고 세계로 연결시킬 수 있는 일종의 교량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