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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이야기

<표해록>저자 최부 선생, 아직도 ‘표류 중’

by 호호^.^아줌마 2015. 3. 31.

<표해록>저자 최부 선생, 아직도 ‘표류 중’

 

중국 ‘효’ 상징 표해록 이야기길 관광개발 움직임도

최부선생기념사업회 “한중문화교류 교두보 삼아야”

 

 

“중국 절강성의 관리들은 최부 선생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고, 최부 선생의 길을 따라 한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소성 무석시 석혜공원에도 최부 선생의 기념비가 있고, 무안군 몽탄면 선생의 묘소는 무안군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정비가 됐지만, 정작 선생의 생가인 나주에는 조그만 비석만이 쓸쓸하게 세워져 있을 뿐입니다.”

 

지난 19일 오전 나주신협 2층 회의실에서 열린 최부 선생 기념사업회 모임에서 강원구(한중문화교류회중앙회장, 왼쪽 사진)회장의 한숨 섞인 인사말이 이어졌다.

 

20명 남짓한 모임에는 나주시의회 홍철식 의장과 장행준 의원, 조영두 의원, 나주문화원 임경렬 원장,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장인 소설가 이명한 선생 등이 자리를 빛냈다.

 

홍철식 의장은 “나주의 뜻 깊은 역사인물이 다른 나라, 다른 지역 사람들에 의해 조명되고 기념사업이 펼쳐지고 있는데 반해, 정작 나주에서는 노력이 미약하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크다”면서 “문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추앙받기에 손색없는 최부 선생의 일대기와 작품들을 되살려 선생의 뜻을 기리고 이를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는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주시는 지난 2008년 6월 최부 선생이 표류하다 처음으로 중국땅을 밟은 절강성 린하이(臨海)시 도저(桃渚)진에 한중 민간우호를 상징하는 사적비를 건립한 바 있다.

 

당시 나주시는 이 사적비 제막을 계기로 양국간의 우호교류 확대와 중국에 최부 선생을 알리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활동이 없다.

 

이후 2013년 7월 금남 최부 선생 기념사업회가 창립총회를 갖고 한중문화교류회장인 강원구 박사를 초대회장으로 선출한 바 있다.

 

강원구 박사는 (사)정율성기념사업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광주 남구 출신으로 중국 혁명음악의 대부로 손꼽히는 정율성(1914~1976)선생의 기념사업을 중추적으로 이끌어 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기념사업회는 중국에서 ‘효’의 상징으로 추앙 받고 있는 최부 선생이 돌아가신 지 511년째인 올해, 한국과 중국의 우호교류 확대는 물론 최부 선생의 업적과 표해록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기념사업에 대해 나주시의 추진의지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계 원로들도 최부 선생의 기념사업을 몇몇 종친들의 일로 여기고 있어 탄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나주읍성권 도시재생사업과 관련해 최부 선생의 생가로 추정되는 금계동 이화아파트 일대를 중심으로 기념관과 기념비를 건립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행정에서는 관심조차 두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최부의 표해록은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문으로 바다와 중국을 표류한 여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일본인 승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기’와 함께 ‘세계 3대 중국 기행문’으로 꼽혀 문학사적으로나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90년대부터 표해록에 대해 연구해 온 북경대학 갈진가 교수는 ‘동방경문록’이나 ‘입당구법순례기’ 보다 표해록이 훨씬 우월하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는 중국 명나라 초기와 전기의 사회 상황, 정치, 군사, 경제, 문화, 교통과 수로, 풍습, 인물 등을 정밀하게 기록했기 때문. 특히 ‘회통운하’ 등 기록이 대부분 상실된 중국의 운하 연구에 귀중한 사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표해록의 가치는 외국에서 먼저 인정했다. 최초 학술적인 번역은 미국인 학자 ‘존 메스킬’이었으며, 이에 앞서 일본에서는 에도시대인 1769년에 ‘당토행정기’라는 이름의 번역본이 출간되기도 했다.

 

표해록을 바탕으로 한 소설 ‘오백년 동안의 표류(어문학사 펴냄)’를 집필한 김갑수 씨는 “조선은 신분과 계급이 엄격한 시대다. 최부는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와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적대 관계로 한 배에 타 풍랑 앞에 서로 협력했음에서 유래한 ‘오월동주’의 예를 들어 신분과 계급에 상관없이 가장 위급한 사람 먼저 구할 것을 명령한다. 최부에게는 양반이요, 최고 상관자인 자신의 목숨이나 아랫것들의 목숨이나 똑같이 소중하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최부기념사업회 한 관계자는 “2005년 광주 남구에서 처음 시작된 정율성음악제가 2007년 광주광역시로 주최로 격상되면서 지금까지 국제음악제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지난해 정율성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광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이 2만 명이 넘어 선 가운데 정율성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화순에서도 정율성 탄생 100주년 기념 한·중 합동음악회를 열어 중국과의 교역을 넓히는 마중물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나주도 최부 기념사업을 통해 선생의 역사적 가치를 되찾고 중국과의 관광교역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 ‘표해록’의 저자 금남 최부 선생의 문학사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한 최부기념사업회 모임이 지난 19일 나주신협 회의실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