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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상처

by 호호^.^아줌마 2010. 1. 31.

김현임 칼럼… 상 처 


무언가 예리한 물체에 다친 통증이 원동력이다. 가슴을 베인 이가 자신의 거즈를 풀어 환부를 드러내놓고 타인의 따뜻한 위로의 말을 기대하는 것. 모든 예술 행위의 동기가 그러하지만 특히 글 쓰는 일이 그렇다.

 

새벽 세 시, 불면으로 전전반측하는 이유다. 어쩌다 이따위 패배의 기미 역력한 링에 섰는지 후회한다. 주먹질을 요령껏 피하던지 실컷 두들겨 맞던지 선택은 두 갈래다. 결국 흠씬 두들겨 맞아 만신창이, 글 쓴 후의 후유증이 그러하다. 가난한 복서가 몇 푼 스파링 머니를 챙기고 홀로 어루만지는 상처의 쓰라림이 남는다. 

 

글 속의 무등산이 팔공산으로 대체되었을 뿐, 내 데뷔작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표절되어 모 잡지의 독자란에 실렸다. 기세등등하던 애송이 작가의 호기였다. 졸지에 입은 필화에 잡지의 공식 사과문과 중앙지 조간에 공개사과문 게재를 요구했었던가. 스무 해 전 그 빳빳하던 풀기는 어디로 갔는지 갈수록 겁나는 게 글쓰기다.

 

당시 그 잡지의 편집장을 글로서 해후한 셈이랄까. 그녀가 신문에 추천한 이상문학전집을 서두로 쓴 이상에 관한 글이다. 올해로 탄생 100주년이라는 이상의 초상화를 천천히 훑는다. 녹색계열의 옷과 삐딱한 모자, 격렬한 터치와 어두운 색감으로 자학과 조소에 가득 차 있는 이상을 그린 건 화가 구본웅이다.

 

문득 스치는 일화 한 토막, 절친한 친구사이였던 구본웅과 이상이 종로 한복판에서 깡패무리를 만났다던가. 괜한 시비를 걸며 한 판 붙기를 청하는데 곱추였던 화가도 딱히 발라낼 살이 없을 정도로 바짝 마른 시인도 주먹으로 단련된 불량배들의 상대가 되기엔 역부족이었다.

 

일촉즉발의 위기, 바로 그때다. 이상이 윗도리를 훌러덩 벗었다, 그리고 허약해 빠진 앙상한 가슴을 앞으로 쑥 내밀며 우리 둘과 당신들이 경합해봤자 결과는 뻔할 것, 하니 상호 무위한 일은 그만 두자 당당히 제의했다. 까칠한 수염과 창백한 얼굴, 이상의 훌쩍 큰 키와 곱사등이 친구의 왜소한 체구, 그 부조화처럼 이상은 한국의 근대문학을 황홀경에 빠트린 천재시인이라 칭송을 받는가 하면 일각에서 한국문학사상 가장 과대평가된 문필가로 꼽힌다.

 

신체적 불구야말로 한 인간이 초인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라던가. 불령선인으로 억울하게 몰려 구금된 도쿄의 경찰서에서 폐병을 앓고 있던 청년 이상은 무슨 생각을 했겠느냐고 필자는 묻는다.

 

난해함과 난삽함의 벽으로 자신을 철저히 에워쌌던 이상의 내밀한 속살은 신과 그만이 아는 방언이 되고 그 누구도 그가 장치한 비밀번호를 제대로 누르지 못한다. 하니 들어섰지만 제대로 들어서지 못하는 내밀한 후원의 전경, 그 휘황한 진면목이다. 

 

 ‘등잔 심지를 돋우고 불을 켠 다음 비망록에 철필로 군청빛 모를 심어갑니다. 불행한 인구가 그 위에 하나하나 탄생합니다. 조밀한 인구가.... 내일은 진종일 화초만 보고 놀리라. 탈지면에다 알코올을 묻혀서 온갖 근심을 문지르리라.’

 

이렇듯 자신의 복잡한 상념을 숨기기 좋아하는 본성에 따라 적어놓았다던 이상.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문제적 작가, 시인, 요절한 천재, 식민지 시대의 모던 보이, 또 드물지 않게 광인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던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법, 대부분 이상의 난해한 작품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는 데...

 

다들 이미 딱지 얹은 부위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동정을 청하기에 급급하건만 유독 자신의 상처를 철저히 은폐하는 이상한 환자가 이상이다. 꿈과 현실과의 괴리가 빚은 내 이중 잠금장치는 서툴기 그지없다. 요 근래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원성으로 상처 받은 내가 홀로 청하는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