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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이야기

김현임 칼럼…봄소식

by 호호^.^아줌마 2010. 2. 20.

 

김현임 칼럼봄 소 식

 

 

내 집 마당에 들어서면 누구나 하게 되는 말이 동물의 왕국이라나요. 개와 고양이 천지, 사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많아요.

 

연분홍색 똥꾸가 너무 이뻐 얻은 분홍이, 하얀이, 꺼무, 호피, 쵸코, 점둥이는 굳이 설명 안 해도 아시다시피 제 지닌 빛깔에 따른 이름이요, 꼬마, 계란이, 초새, 제각이는 생김새나 성격, 때론 제 본거지에 따른 호칭이고, 올겨울에 낳은 깜장 강아지를 장군이라 불렀더니 집 손님인 진짜 장군님께서 들으시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는 근심어린 충고까지 들었죠.

 

하지만 최근에 지은 그 이름의 유래야말로 걸작이죠. 장난꾸러기 장에, 사내 녀석이란 뜻의 군이니 신발 물어뜯기, 화분 엎기, 고양이 물어 흔들기 명수인 그야말로 지양퉁이 녀석에겐 맞춤인 호칭입니다.  


지금 화단에서 동백이 한창 몸단장에 바쁩니다. 그 뿐 아니죠. 아직 제 계절은 멀었건만 금방이라도 터트릴 듯 도톰히 물오른 목련이라던가. 여전히 핏빛 열정 드러낸 줄기의 복숭아와 隱者(은자)의 묵상 중인 사과꽃의 대조, 뜨뜻이 데워진 장독위에 축 늘어진 고양이 가족들의 평화도 그렇고 이제 막 젖니처럼 돋은 상추에, 텅 빈 닭장에, 지금은 흔적 없지만 꽃양귀비라던가, 맨드라미, 봉숭아꽃, 분꽃 있던 자리도 천천히 더듬고 혹한에도 아랑곳없이 싯푸른 상사화에 눈길이 오래 머뭅니다. 이 대목을 읽은 후 5분만 눈 감으면 펼쳐지지 않나요. 화사한 꽃마당!


‘내게 저축해 둔 180달러가 있어. 그러니까 내일 아침 은행이 문을 여는 대로 돈을 찾아다가 친구에게 가서 차를 빌리는 거야. 농담이 아니고 정말이야. 오두막집 같은 데서 그 돈이 떨어질 때까지 지내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거야. 그러고는 냇물이 흐르는 곳에서 사는 거야.’ 혹자는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이런 대사도 문득 떠올리게 될른지요. 


어쨌든 동절기에 드문 뜻밖의 호사, 햇살의 애무에 실실 웃음이다 나옵니다. 오늘 내 지나친 이런 바이오리듬의 상승은 사실 졸작 두 편이 명수필로 뽑힌 것도 무시할 수 없지만요. 입가에 웃음을 흘리며 장독을 열어 봅니다.

 

막 숙성단계로 진입하는 김장김치와 싱건지를 꺼내 재갈무리 하고 종내 미뤘던 매실엑기스항아리도 살핍니다. 일하는 틈틈이 자갈 틈바구니에 애살스럽게 돋은 풀꽃들을 보는 내 눈길에는 다정이 넘칩니다.


봄이라는 절기가 본디 어수선하니 두서없는 봄타령조의 이 글을 부디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모쪼록 이 글로 잠시 봄소리에 귀기울여보는 계기가 되신다면야. 자박자박 자박자박 들려오는 봄 발자국 소리 진달래, 개나리 이런 봄 초병 꽃들의 아기새순 가득 안고 다가오는 소리에 섞여 무심코 지나가려는 바람에 나무가 반색하는 소리도 들릴 겁니다.

 

눈물이 글썽끌썽 이제나 저제나 올까 제 온몸 세우고 기다리던 봄을 반기는 나무의 소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