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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사람들

나주예술인들의 레드 카펫, 그 영광을 보며...

by 호호^.^아줌마 2011. 1. 20.

 

나주예술인들의 레드 카펫, 그 영광을 보며...


“어머, 이거 뭔가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이 분은 무궁화 그림 잘 그리시는 화가신데 웬 연극상 후보?”

 

옳거니, 뭔가 하나 잡았구나 하는 생각으로 목소리에 잔뜩 힘을 실어 얘기를 했다. 이학동(87,오른쪽 사진)선생은 아주 오래전 초년기자시절에 취재를 한 적이 있는 원로화가가 분명한데, 연극분야 나주예술문화상 후보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내 얼굴이 붉어졌다. 겨우 반 토막 정도 알고 있는 짧은 정보로 아는 체를 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 분은 광주전남현대극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조대극회 1기생으로 광주지역 현대극 운동의 선구자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말았다. 특히, 극예술의 불모지였던 나주에서 1981년도에 극단 ‘예인방’의 창단과 그 창단공연으로 ‘시집가는 날’을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주선한 연극계의 대부라는 사실을...

 

나주예총 김진호 회장으로부터 나주예술문화상의 심사위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가 무슨 자격으로요?”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나주의 문화예술행사장을 뛰어다니며 봐왔던 문화예술인들의 잔치에 내가 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싶어 차마 외람된 마음으로 심사에 참여했던 것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신문이며 방송에서는 영화, 드라마, 가수,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무슨무슨 대상 시상식을 한다면서 요란을 떤다. 특히, 시상식장에 참여하는 유명 연예인들이 차에서 내려 행사장에 입장하기까지 불과 2~3분 거리의 레드카펫은 유별나게 시선을 끌며 또 하나의 화제를 낳곤 한다.

 

지난해 섣달 28일 나주에서도 문화예술인의날 행사와 함께 22명의 예술인들이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을 누렸다. 나주시민회관에 마련된 소박하면서도 알찬 기획이 돋보인 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다.

 

공교롭게도 첫 번째 예술문화상 대상 수상자로부터 이번 세 번째 수상자에 이르기까지 인연이 깊은 분들이다. 첫 수상자였던 시원 박태후 화백은 20년쯤 전 어느 겨울날, 시를 쓴다던 친구가 눈발을 헤치고 그의 화실 죽설헌을 찾아가 사군자를 배우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보면서 알게 된 분이다.

 

두 번째 수상자인 김노금 선생은 함께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인형극을 공연하던 인연을 시작으로 왕성한 사회활동 틈틈이 동화책이며, 수필집을 척척 내놓던 ‘슈퍼우먼’의 전형이던 분이 아닌가.

 

그리고 이번 세 번째 수상자인 한국사진작가협회 나주지부 김성주 지부장<왼쪽사진 왼쪽>. 글쎄다, 나는 아직도 이 분이 사진의 불모지인 나주에서 처음으로 사진작가모임을 만들고, 전국사진대회를 개최해 나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국에 알린 사진작가라는 생각보다는 어릴 적 참고서를 사러 갔다가 여학생이며, 보물섬 같은 월간지 한두 권을 뚝딱 해치운 뒤  빨강머리 앤까지 독파하고 나와도 뭐라 한 말씀 않던 인자한 책방 주인아저씨라는 기억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분이다.

 

이렇듯 나주의 레드카펫 주인공들은 멀리 브라운관 속의 스타들 마냥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나와 함께 생활하며 예술활동을 해온 이웃집 아저씨, 아주머니 같은 분들이다. 이 분들이 있었기에 나주의 문화예술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갈 수 있었다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진다.

 

지역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한다는 것은 기자활동을 하는 것처럼이나 고단할 거라는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낀다. 이런 가운데 열리는 예술인의날 행사와 예술문화상 시상은 예술인들의 화합과 친목을 도모한다는 의미를 떠나서 예술인으로서 긍지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털털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건달연기가 인상적이었던 연극상 수상자 송수영 씨, 턱시도를 입은 뒷모습에 반했던 마에스트로 변욱 씨, 그리고 사진작가상을 받은 이계남 씨와  미술상을 받은 김명희 씨, 오랫동안 관망하다 나주문단에 새롭게 발을 내딛은 문학상 수상자 김현임 씨.

 

더구나 이번 예술문화상 시상식에서는 김진호 회장의 그 넓은 오지랖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광주전남지역 문화예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정현(53, 한나라당)의원을 한국예총 회장 공로상 수상자로 추천해 이날 시상한 것이다.

 

이정현 의원은 연극 ‘김치’로 나주와 광주에서 공전의 히트를 장식했던 전문예술극단 ‘예인방’의 국회 공연을 주선한 장본인이자,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국회 공연이 취소되자 단원들이 난민생활을 하는 연평도주민들에게 김치를 담가 전달하는 현장에서 처음 만난 의원이다.

 

시상식장에서 나주미협 회장인 소전 김선회 화백의 그림을 받아들고 놀라움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의 모습에서 고대 로마의 외교관이었던 가이우스 마이케나스를 떠올렸다.

 

마이케나스는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같은 문인들을 후원했던 돈 많은 후원자였는데, 지금의 메세나(Mecenat, 커다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개인이나 기업 또는 이러한 활동)운동의 효시가 됐다. 이정현 의원 같은 메세나가 있기에 지방의 문화예술이 계속 줄기를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주문화예술인의 날의 의미와 비전은 김진호 회장의 웅변에서 더욱 또렷해졌다.

“문화가 산업으로 변모하는 이 시대에 예술이 지역을 찾아오는 관광객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지역문화산업의 상품이 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할 때입니다. 예술문화 콘텐츠를 통해 문화로 사람을 부르고 가장 행복이 넘치는 나주를 만들어 가는데 예술인들이 앞장섭시다.”

 

“예술이 밥 먹여 주냐?”는 사람도 있다. 예술 하는 사람에게 시집가면 밥 굶는다며 퇴짜를 놓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예술은 지금도 배고픈 것 같다. 하지만 그 배고픔 속에서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의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든든한 삶의 희열을 느끼며 살아간다.

 

2011년 새해, 문화예술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될 지 부푼 기대 속에서, 새해에는 지역문화예술인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고 시민들의 문화적 향수를 충족시켜나가는 일에 나주시와 문화예술계가 터놓고 지역의 문화예술정책을 얘기할 수 있는 문화정책간담회라도 한번 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