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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이야기

한국학호남진흥원 나주유치위원회 안동을 가다

by 호호^.^아줌마 2015. 5. 22.

탐방…한국학호남진흥원 나주유치위원회 안동을 가다

 

◇ 지난 12일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을 방문한 한국학호남진흥원 나주유치위원회는 이용두 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국학진흥과 호남진흥원 유치의 당위성을 모색했다.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 설립 후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메카로 우뚝 서

 

 

학봉 김성일 종택, 나주목사 재임시절 노비소송 등 영호남 학문교류의 장으로 기대

나주향교·남평향교·나주문화원 등 한국학호남진흥원 유치 노하우 1박2일 안동답사  

 

2009년 무렵까지 추진되다 중단됐던 한국학호남진흥원 나주 유치운동의 불길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한국학호남진흥원 나주유치위원회는 지난 12일과 13일 이틀 동안 나주향교(전교 박영욱)와 남평향교(전교 홍경석), 나주문화원(원장 임경렬) 회원들과 함께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를 답사했다.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국학진흥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이 영남의 역사적 중심지인 안동에 설립된 것처럼 한국학호남진흥원도 호남의 역사적 중심지인 나주에 설립돼야 한다는 입장을 교감하는 계기가 됐다.

 

일행은 또 나주목 천년의 역사 속에 백성들로부터 가장 신임이 두터웠던 목민관으로 손꼽히는 학봉 김성일 목사의 종택을 방문, 당시 김성일 목사가 나주나씨와 나주임씨 문중 사이에 벌어진 노비소송 등을 다룬 나주목사 입안문 등 고문서를 직접 살펴보는 기회도 가졌다.

 

 

한국정신문화의 요람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Korean Studies Advancement Center)은 전통문화유산의 조사연구를 통해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하기 위해 설립된 경상북도청 산하 재단법인이다.

 

한국학 자료 중 문중이나 서원 등 민간에 흩어져 소장되어 멸실 위기에 직면한 자료의 수집, 보존, 연구 및 보급을 통합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5년 12월 7일 법인 설립 허가를 받아 1996년 설치사무소를 개소하였다. 1997년 본관인 홍익의 집 공사를 착공하여 2001년 4월 30일 준공하였다. 2001년 10월 5일 홍익의 집 개관식을 세계유교문화축제 개막식과 병행하여 거행하였다. 2002년 12월 30일 유교문화박물관 및 장판각 건축 공사에 착공하여 2004년 9월 30일 준공하였다.

 

2005년 7월 15일에는 장판각 준공식을, 2006년 6월 20일에는 유교문화박물관 개관식을 각각 거행하였다. 2005년 1월 20일 국학문화회관 공사를 착공하여 2007년 5월 3일 국학문화회관을 개관하였다.

 

 

고문서의 수집에서 활용까지

 

국학 자료 조사·수집 및 관리·보존 사업, 국학 연구 사업, 교육 연수 사업, 문화콘텐츠 개발사업, 유교문화박물관 전시 사업 등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현재 조직은 원장, 이사회, 부원장, 기획홍보실, 연구부, 한국유교문화박물관, 인성연수관, 사무국 등으로 편성되어 있다. 이중 연구부는 국학연구실·고전국역실·디지털국학실로, 한국유교문화박물관은 국학자료실·전시운영실·목판연구실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은 모두 6개이며 홍익의 집, 유교문화박물관, 장판각, 국학문화회관 등으로 나누어진다. 홍익의 집은 2개 동으로 된 본관 건물로 앞동은 지하 1층 지상 3층, 뒷동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이며 연면적은 12,812㎡이다. 주로 연구실과 행정실로 쓰이며 자료정리실, 도서관,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회의실, 각종 세미나실 등 연구에 필요한 각종 시설들이 배치되어 있다.

 

유교문화박물관은 면적 4,414㎡의 4층 건물로 1층은 각종 기록문화재를 정리, 분류, 보존할 수 있는 수장고를 갖추고 있으며 2~4층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장판각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역점을 두고 수집하고 있는 목판을 전문적으로 보관하는 시설이다. 연면적 1,402㎡에 지상 2층 건물 두 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습도에 따라 자동으로 개폐되는 전동식 창을 비롯하여 목판 보관에 필수적인 각종 보존 장비를 갖추고 있다.

 

국학문화회관은 방문자들의 숙소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로 2인실, 5인실, 10인실 등 다양한 규격의 객실이 구비되어 있으며 총 수용 규모는 300명이다. 연면적 7,160㎡의 지상 4층 건물로 운영은 전문 연수 기관에 위탁하고 있다.

 

 

국학진흥원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 지방은 조선시대 유교문화권의 중심이었고 현재까지도 유교문화 자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유교문화의 세계적인 보고이다.

 

그러나 개개 집안에서 보유해 온 유물들의 경우 체계적인 보존이 어려워 훼손될 가능성이 높은데다 도난으로 인한 멸실의 위기까지 가중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민간 소장 기록 문화유산들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수집·보존·연구 사업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러한 과제의 해결을 통해서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에 적극 기여하고 있으며 고전국역자 양성 과정을 통해 고도서와 고문서를 국역할 수 있는 인원들도 양성하고 있다. 또한 국내외 한국학 또는 유교문화 관련 연구기관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으며 국학의 세계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의성김씨 학봉 종택을 가다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있는 의성김씨 학봉 종택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살았던 가옥이다. 김성일은 류성룡(柳成龍)과 더불어 퇴계 이황의 고제(高弟)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27세에 사마시, 1568년(선조 1)에 증광문과에 합격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77년(선조 10)에는 사은사를 따라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파견되었고, 1590년(선조 23)에는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겸순찰사를 역임하여 왜적과의 전투를 독려하다가 진주성에서 병사하였다.

 

의성김씨 학봉 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으나 지대가 낮아 자주 침수된다며 김성일의 8세손 김광찬(金光燦)이 1762년(영조 38) 이곳에서 100여m 떨어진 현재 소계서당(邵溪書堂)이 있는 자리에 옮겨 살았고, 의성김씨 학봉 종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 한다.

 

그러다 1964년 종택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 위치로 이건하였는데, 이때 종택의 안채만 옮기고 사랑채는 남겨두어 소계서당으로 쓰도록 하였고, 소계서당을 개조하여 종택의 사랑채로 꾸며 사용하게 되었다.

 

최근 지은 5칸 규모의 서북쪽으로 난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 왼쪽에 정침과 그 뒤쪽의 사당이 서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마당 건너편에는 근년에 지은 운장각(雲章閣)과 정자가 서북향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 정침은 ‘ㅁ’자에 양익이 달린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최근 왼쪽에 직각으로 ‘一’자 아래채를 달아내어 사(巳)자형으로 바뀌었다.

 

정침의 정면 오른쪽에는 사랑채가 돌출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2칸통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을 1칸씩 두고 앞면에 길게 툇마루를 둔 중당협실형의 소계서당이었던 건물을 개조하면서 왼쪽 2칸을 사랑방으로 꾸미고, 오른쪽의 2칸은 사랑 마루방으로 만들었다. 사랑방 왼쪽에는 2칸통의 작은 사랑방을 두었으며, 뒤로는 1칸 책방을 놓아 안채의 우익사에 연결하였다.

 

 

안채는 오른쪽 3칸을 대청으로 꾸미고, 왼쪽에는 안방 2칸을 두고 끝에 부엌을 놓았으며, 그 앞쪽의 좌익사는 식당 등으로 내부가 개조되었다. 사랑채나 안채의 상부 가구는 5량가이고, 제형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올렸다. 정침의 오른쪽 뒤편에는 사당 3칸을 배치하고 토석 담장을 둘러 별곽을 이루었다.

 

학봉종택은 1995년 12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현재 종손 김종길 씨가 소유, 관리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많은 건물로 구조, 양식적인 특징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안동의 대표적인 양반 가옥의 전형으로 유명하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유치를 위해서는?

 

 

한국국학진흥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의 표본으로 제시한 영남지역의 대표 국학진흥기관으로서, 앞으로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을 위해 나주 준비위원회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나주는 전통문화유산의 상징성과 함께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소재지라는 점을 최대한 부각시켜 중앙부처와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 등으로부터 예산확보가 용이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가 지난해 초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과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 기금까지 출연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해 오고 있는 가운데, 광주 동구와 서구 등 자치단체장들도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전남지역에서는 장성군과 담양군 등 지자체들이 욕심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은 지난해 가을 나주시민회관에서 ‘나주 유학의 전통과 건강한 삶’을 주제로 국학순회교양강좌를 갖고, 호남지역의 전통문화와 국학 진흥을 위해 한국학호남진흥원이 조속히 설립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동신대 지역문화콘텐츠인력양성사업단 단장인 이정호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나주설립 준비위원회는 앞으로 나주시에 조례제정과 설립기금 출연 등을 요구해 나가는 가운데 부지 및 임시사무실 확보 등을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 나주일행이 목판 42만점이 소장된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 자료실을 돌아보고 있다.

 

 

 

 

◇ 학봉 김성일 종택에서 조선시대 최고의 명재판으로 손꼽히는 학봉 김성일 목사의 노비소송 입안문을 방문객들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